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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썰·감상·해석

하마용병

by RAYO. 2015. 2. 10.

07. 그대를 사랑해 (Ich liebe dich)

자신의 연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미쳐버린 마법사가 있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초월자로 각성했고, 세상의 모든 마법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가 딱 하나 얻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영원'이었다. 그는 어떤 마법이든 쓸 수 있었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지만 그 중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법은 풀리고 피조물은 스러져 갔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은 연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마법사는 연인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었으나 영원을 선사하지는 못했다.

06. Equilibrium

정통파 빛의 마법사인 하얀 마법사 X 레지스탕스의 배틀메이지인 용병이 보고 싶다. 배경은 메이플 월드가 아닌 판타지 세계이고 에델슈타인은 도시가 아닌 나라(공화국). 하얀 마법사가 등장하므로 당연히 검은 마법사라는 존재는 없는데 에델슈타인을 점령한 것은 하얀 마법사의 조국이자 마법사들의 나라인 '빛의 제국'. 이 제국의 실권을 장악한 단체 '오로라'는 마법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어둠으로 간주, '어둠에 빛을'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음.

에델슈타인은 기계 문명이 발달한 공화국이었는데 강력한 마법 군대를 가진 빛의 제국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음. 의회도 군대도 강제로 해산되고 자원마저 모두 내주는 상황에서도 나라를 되찾자며 결성된 것이 레지스탕스. 레지스탕스의 마법사인 배틀메이지들이 정공법으로 빛의 제국의 마법사들을 이길 수는 없었음. 애초에 현존하는 '마법'은 모두 빛의 제국의 마법사들이 만들고 발전시켜 온 것이기 때문. 그래서 그들은 금기인 사신과의 계약을 택함.

사신과의 계약은 성립과 유지 모두에 계약자의 수명을 필요로 했고, 거기에다 사신의 힘을 사용하면 할수록 정신 또한 광기로 오염되어 갔음. 사신과 계약해 배틀메이지가 되는 순간부터 그 생의 결말은 사신에게 육신의 수명을 모두 빼앗겨 죽음을 맞이하거나, 정신이 광기에 완전히 침식당해 통제 불능의 괴물이 되기 직전에 동료의 손에 살해당하는 것으로 정해지는 것이었음. 게다가, 레지스탕스에게 있어 빛의 제국 측에 포로로 붙잡히는 일은 죽음보다 나쁘다고 했는데 배틀메이지의 경우는 특히 심했음.

05.

사이코패스 하마 X 알고 보니 이복형제인 용병이 보고 싶다. ((개막장)) 용병은 어릴 때 외삼촌 댁에 맡겨졌는데 외삼촌 내외가 좋은 사람들이라 친부모 못지않게 잘해줘서 평범하게 행복하게 자람. 그런데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친모가 사실은 살아있으며, 정신이 온전치 못해 격리 수용되어 있는데 지금 위독하다는 사실을 듣게 됨. 너(용병)에게는 모르는 편이 나은 친모라 이제껏 숨겼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는 찾아가 봐야 하지 않겠냐며. 

용병의 외가는 부자라 그의 친모는 외딴 곳에 위치한 저택에 고용인 몇을 두고 유폐되어 있었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고택에서 하나같이 어두운 낯빛의 고용인들에게 안내받아 마주하게 된 친모는 비쩍 야위어서는 숱이 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를 산발한 채였음. "아드님이 찾아오셨어요."라는 고용인의 말에도, 다가선 용병의 존재에도 여자의 퀭한 눈은 미동도 없이 허공만을 비출 뿐이었음. 어색하게 서서 여자를 바라보던 용병은 조심스레 "어머니?" 하고 불러 보는데, 그 순간 여자의 몸이 움찔하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용병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름.

귀신 같은 형상으로 용병의 목을 조르며 "악마! 악마!" 하고 외치는 여자의 손아귀 힘이 어찌나 억센지 다 죽어가는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고, 고용인 몇이 더 달려오고 나서야 겨우 그녀를 떼어낼 수 있었음. '악마'라는 단어가 반복된다는 것 외에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쉴새없이 해대며 난동을 피우는 여자에게 진정제를 투여하고, 구속구를 채우고 나서 고용인은 최근에는 발작하는 일이 없었기에 관리를 느슨히 했었다며 용병에게 사죄함. 용병은 자신은 괜찮지만, 여기 더 있어 봐야 어머니께 좋을 것 같지 않으니 이만 가 보겠다고 함.

벌겋게 손자국이 남은 목을 쓸어 보며 저택을 나오던 용병은 새하얀 머리카락의 남자와 마주침. 남자가 먼저 인사를 건네며, 이 저택을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어떻게 오셨냐고 물음. 용병은 여기 사는 분의 아들이라고 대답하며, 당신은 고용인이냐고 되물음. 남자는 그렇지는 않지만 여기 사는 분과는 오랜 인연이라고 함. '외가 쪽 친척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던 용병은 문득 남자가 흰 장미꽃 다발을 들고 있는 것을 의식함. 용병의 시선에 남자는 미소하며, "인연의 증표... 같은 겁니다."라고 말함. 더 묻기도 뭣해 "아... 그럼 들어가 보세요. 저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돌아서는 용병에게 남자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또 뵙죠."라는 말을 남김.

남자의 용모는 단정했고, 태도는 정중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싸한 느낌이 든다고 용병은 생각함. 외가 쪽 친척은 아닌 것 같은데(친척이라면 굳이 오랜 인연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도 없고)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했음. 갑작스럽게 알게 된 친모, 그녀의 광기, 그리고 기묘한 남자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그날 밤, 용병은 어머니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운명했다는 연락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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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어머니랑 아버지 둘 다 부자집 자식으로 정략결혼해서 집안이 돈만 많지 완전 콩가루였으면. 그리고 용병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얻은 자식이 하마. 여차저차해서 용병네 집에서 둘은 같이 자라게 되는데 겉으로 보기에 하마는 천사처럼 예쁜 얼굴에 얌전하고 예의 바른 아이지만 사실은 사패.

용병네 집안에서는 가깝게 지내는 가문의 딸인 에피네아를 장래 용병의 결혼상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용병은 그런 데 관심없고 에피네아는 하마에게 반함. 어느 날 에피네아가 하마에게 예쁜 새를 선물로 주는데 하마가 웃으면서 정말 고맙다고 받아 놓고는 집에 와서 그 새를 무참히 죽이는 장면을 우연히 용병이 목격. 그는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흠 잡을 데라고는 없는데도 어딘지 모르게 거북한 느낌인 평소의 하마보다 본능에 충실한채 새를 난도질하는 눈앞의 소년이 더 보기 좋다고 생각함. 집안이 집안이다 보니 용병은 가식투성이인 인간 관계에 둘러싸여 자랐고 그 결과로 그도 조금 비틀려 있었던 것.

아무튼 이 일이 둘이 친해진 계기. 용병은 하마의 본성에 매력을 느껴 그것을 더욱 끌어내려 하고 하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용병에게 끌림.

04. 프렌즈스토리 AU

하얀 교생 X 전학생 용병. 더스트를 퇴치하고 나오는 길에 하얀 교생이 나타나서 이 세계 사람들에게 정체를 폭로당하고 싶지 않다면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협박했으면 좋겠다. 입막음 대가는 몸으로 치르는 걸로...

독서실, 음악실, 과학실, 양호실 등 학교의 다양한 장소에서 누구에게 들킬까봐 억지로 소리 참는 전학생 용병이 보고 싶다(...). 그런 용병을 하얀 교생은 더 자극하면서 잘도 참는다며, 그쪽 세계(메이플 월드)의 존재가 이 세계에 알려지면 곤란하다고는 해도 굳이 당신 한 사람이 이런 일까지 감수해 가며 세계를 위할 필요가 뭐 있냐고 물었으면. 반박하려던 전학생은 하얀 교생이 비꼰다기보단 안쓰러워하는 듯한 표정인 것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비밀을 빌미로 마음대로 전학생을 범하던 교생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당신은 변하지 않았군요."라 덧붙이며 처음으로 부드럽게 키스했으면. 메이플 월드에서 온 이 전학생은 그 옛날 하얀 마법사를 알던 용병의 환생이라는 설정으로.

반듯한 얼굴 하고서는 학교에서 태연하게 전학생(용병)을 범하는 하얀 교생, 이라는 막장 상황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멜로 같은 게 첨가되고... 결말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03. Buddy

메이플 월드가 아닌 판타지 세계 AU. 하얀 마법사와 용병이 10대 중반쯤에 만난다는 설정.

용병은 의뢰로 각종 마법 관련 기관과 마법사들이 몰려 있는 마법도시로 가게 됨. 마법도시 내에서도 최고 명문인 마법학교에 재료를 조달하는 일을 맡는데, 그 과정에서 학생인 하얀 마법사를 만남. 용병은 새하얀 머리카락에 수려한 용모를 지닌 하얀 마법사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저도 모르게 눈길을 빼앗김. 외모가 조금 눈에 띄니까 그런 것뿐이라며 되뇌이지만 어느새 그에게 신경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함. 주변이 뭐라 하든 무관심하던 용병이었지만 하얀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임. 그 결과로 하얀 마법사가 마법도시 내 최고 명문인 학교에서도 따라갈 자 없다고 소문난 천재임을 알게 됨. 모든 이의 동경의 대상인 엘리트 마법사와 언제 죽는다 한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을 떠돌이 용병. 처지가 달라도 너무 달랐기에 자신이 하얀 마법사에게 신경쓴다 한들 그와는 말 섞을 일도 없을 거라며 용병은 자조함.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법학교 측에 재료를 건네주고 돌아가던 용병을 누군가가 불러세움. 혹시 일에 실수가 있었나 머릿속으로 재빨리 생각하며 뒤를 돌아본 용병은 하얀 마법사와 마주함. 놀라서 생각도 말도 순간적으로 모두 멈춘 용병에게 하얀 마법사는 떨어뜨린 물건 아니냐며 작은 노트를 건넴. 노트는 용병의 것이 맞았는데 용병이 일을 하면서, 살면서 보고 들은 것을 간략하게 기록한 일기 비슷한 것이었음. 용병이 놀람, 얼떨떨함, 긴장 등이 섞여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은 채 노트를 주워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한 뒤 돌아가려는 찰나, 하얀 마법사가 "마음대로 읽어서 죄송하지만... 기록, 꽤 재미있었습니다."라고 말함. 기록 중에는 하얀 마법사에 대한 내용도 있었기 때문에, 용병은 당황하여 어떻게 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음. 그런 용병에게 하얀 마법사는 조곤조곤, 자신은 학교에서 공부나 연구만 하느라 바깥 세상을 돌아다녀 본 일이 별로 없다며, 노트에 기록된 세상 이곳저곳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고 덧붙임. 그리고 괜찮다면 가끔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러 오지 않겠냐고 부탁함. 용병은 아까부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진 탓에 진정되지 않는 기분이었지만, 평소 신경쓰고 있던 하얀 마법사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 것은 좋다고 생각해 하얀 마법사의 제안을 수락함.

하얀 마법사는 학교에서의 공부와 연구로, 용병은 의뢰 수행으로 낮에는 둘 다 바빴기 때문에 둘은 각자 할 일을 마친 후 밤에 만남. 만남의 장소는 그때그때 달라졌으며 다양했음. 비교적 시간이 이르거나 둘 다 공복인 채 만나는 날에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했고, 바(Bar)에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할 때도 있었음. (마법사들은 음주에 관대한 편으로 -영적인 엑스터시 같은 것을 믿으며,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한 방편이 음주라고 생각하기 때문- 미성년인 학생들의 음주도 제재하지 않는 분위기였기에 마법도시의 술집에서는 미성년자에게도 술을 판매함. 용병은 마법도시의 사람은 아니지만 청소년 보호 같은 개념이 없는 험난한 세계에서 자라 왔기에 음주 경험도 있고 별 거부감이 없음. 그렇지만 용병도 하얀 마법사도 애주가는 아닌 편.) 그 외에도 마법학교 안이나 시내의 곳곳이 만남의 장소가 됨. 둘은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눔. 용병이 가 봤던 곳들, 해 왔던 일들과 하얀 마법사가 연구하고 있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두 사람에게 평소 있었던 일이나 세간에 떠도는 소문들 또한 이야깃거리가 되었음. 두 사람 모두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종종 침묵이 찾아왔지만, 그 또한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졌음. 둘은 사는 세계가 달랐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도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지만 왠지 편하고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용병은 생각함. 그렇기에, 언제나 침착하며 표정 변화도 그다지 없는 하얀 마법사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 이대로여도 괜찮을 거라고 속으로 되뇌임.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 시간이 늦은 것을 확인하고, 돌아갈 채비를 하며 다음에는 어디서 만날지 이야기함. 하얀 마법사가 먼저 말을 꺼내더니, 자신이 있는 탑으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함. 용병은 수락하며, 마법학교 안의 여러 건물에 가 보았지만 하얀 마법사가 살고 있는 곳은 처음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날, 하얀 마법사는 용병을 데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탑을 올라, 몇 개의 연구실과 자신의 방을 지나 탑의 꼭대기로 용병을 안내함. 탑의 꼭대기에는 천체 관측 설비가 갖춰져 있었음. 여기서 하늘을 보는 건가 하고 생각하며 용병은 하늘을 올려다봄. 오랜만에 바라본 밤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음. 하얀 마법사는 조금 미안한 듯한 기색으로, 오늘 맑을 줄 알고 별을 보면 좋을 것 같아 이리로 불렀는데 날씨가 이래서 멀리까지 온 보람이 없겠다고 말함. 그런 다음 내려가서 이야기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권하려다, 용병이 하늘을 보느라 여념이 없는 것에 잠시 그대로 두기로 함. 흐린 밤하늘에서 별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구름 너머로 희미하게 달이 보였음. 조금 기다리자, 구름이 움직여 선명하고 고운 달이 드러남. 그 모습을 용병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에 냄. 그러자 하얀 마법사가 말함. "달이 아름답다, 라... 그 말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용병이 모른다고 하자, "학생들을 가르치던 소설가의 이야기입니다만," 하얀 마법사는 말을 이으면서 용병에게 다가옴. "이런 겁니다." 하얀 마법사가 말을 마친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음. 길지 않은 입맞춤이 끝나고, 용병은 말없이 하얀 마법사를 바라봄. 용병의 시선을 마주보는 하얀 마법사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용병으로서는 알 수 없었음.

하얀 마법사와 알고 지내면서 그에 대해 용병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넘어 끌리고 있었고, 그 감정을 용병 스스로도 알고 있었음. 그렇지만 그는 현상 유지 외의 다른 행동은 할 수 없었음. 용병이 살고 있는 세계 - 떠돌이 용병과 브로커들, 밀매업자와 매춘부들이 있는 뒷골목에서는 끌린다 싶으면 붙어서 뒹구는 것이 일상이었음. 시간, 장소, 상대가 누구인지(그리고 몇 명인지) 따위를 신경쓰는 이는 없었으며 -취향(호불호)이야 각각 존재하는 법이었지만,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은 없었다는 의미-, 충동이 일면 해소하고 해소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이 당연시되었음.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이들 대부분은 연고도 없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을 하다 보니 욕구는 미루지 말고 바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과 한 상대에게 정착하는 것(그리고 가족을 만드는 것)을 꺼리는 풍조가 겹쳐 뒷골목만의 기이한 질서가 만들어진 것이었음. 그러나 용병은 자신이 이제까지 해 온 방식- 뒷골목의 방식대로 하얀 마법사를 대할 수는 없었음. 하얀 마법사는 용병이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세계의 방식대로 그를 대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끌리는 사람을 대하는 다른 방식은 알지 못했기 때문. 그렇기에 이야기 상대라는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던 용병이었지만, 하얀 마법사의 행동(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초대, 키스)으로부터 이 관계를 변화시켜도- 끌리는 대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얻음. 용병은 살며시 하얀 마법사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김.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한 번 겹침. 이전의 것이 살짝 맛보는 것과 같았다면, 이번의 것은 서로를 깊이 탐하는 듯한 진한 입맞춤이었음. 별도 없이 달빛만이 홀로 비추는 밤하늘 아래, 그렇게 두 사람은 첫 관계를 가짐.

02. 도화(桃花)

하얀 마법사와 용병은 신전 옥상에서 대화하고는 했음.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용병은 하얀 마법사가 있는 옥상으로 올라감. 용병은 무기를 다룰 때 더 편리하도록 장갑을 끼고 다녔는데, 언제 습격받을지 모르는 용병이라는 직업상 평소에도 벗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음. 그런데 그 날은 용병이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음. 연구원들에게 부탁받은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바깥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던 중 몬스터의 잔해가 달라붙어 신전 내 세탁실에 부탁하고 왔기 때문. 처음으로 드러난 용병의 맨손은 그동안의 험난한 삶을 증명하듯 굳은살과 흉터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왼손 등에 새겨진 기묘한 문자였음. 하얀 마법사가 그것에 대해 묻자, 용병은 어릴 때 만났던 점쟁이 노파에 대해 이야기함.

용병 사무소에 접수된 노파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용병의 얼굴을 보자마자 크게 혀를 참. 어린아이라 못 미덥냐고 용병이 묻자, 노파는 대가 없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는 법이니 일단 말한 재료나 구해 오라며, 손님 받아야 하니 얼른 나가라고 용병을 쫓아냄. 용병은 노파의 말이 이해도 되지 않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 했으므로 일단 재료를 구해 감. 보수를 달라는 용병에게 노파는 돈 따위보다 너에게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남은 인생 조금이라도 순탄하게 살고 싶으면 잠자코 내가 하는 대로 따르라고 함. 그러나 그녀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용병은 거절하는데, 괴팍한 노파는 의외로 '무기는 언제나 소지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잊지 마라'는 말만 덧붙인 채 순순히 용병을 돌려보냄. 그날 밤, 노파가 했던 이상한 말들의 뜻을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용병은 자신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소년들로 구성된 한 패거리와 시비가 붙음. 떠도는 아이들의 잠자리는 거리 구석구석이었는데, 자리의 소유권을 놓고 시비가 붙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음. 패거리는 자리를 내놓으면 위해는 가하지 않겠다며 용병을 협박하고, 용병은 비킬 이유가 없다며 맞섬.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소년들에게도 전혀 기죽지 않는 용병에게, 마침 얼굴도 곱상한데 뒷구멍이라도 뚫려야 고분고분해지겠냐며 윤간을 시도함. 용병은 품 안에서 무기를 꺼내들어 저항하고, 용병이 바로 무기를 꺼내들 줄 몰랐던 패거리가 당황하는 사이 도망쳐 나옴. 다른 안전한 잠자리를 찾으러 가려던 그는 문득 노파의 말을 다시 떠올리고, 그녀가 허튼 소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그녀를 찾아감. 노파는 용병을 보더니 올 줄 알았다며, '오늘 같은 일을 또 겪고 싶지는 않지?'라고 물음. 용병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파는 그렇다면 너에게 주술을 하나 걸어주겠다고 함. 그녀는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힌 진 위에 용병을 세우고, 무어라 주문을 외움. 그러자 진 위에 적힌 글자가 움직여 용병의 몸을 타고 올라오더니, 왼손 등에 모여 하나의 문자로 새겨짐.

윤간을 당할 뻔했다는 대목은 빼고서 이야기를 마친 용병은, 어릴 때부터 용병 생활을 하다 보니 괜한 질문은 하지 않는 버릇이 몸에 배어, 주술의 의미도 문자의 의미도 노파에게 묻지 않았고 그녀도 굳이 말해주지 않았기에 아직도 그 의미는 모른다고 말함. 그래도 노파가 사이비는 아닌 것 같았고 신변에 도움이 되는 걸 해 준 것 아니겠냐만은, 험난한 시대에 떠도는 용병으로 살아서 그런지 특별히 순탄하게 살아온 것 같지도 않다고 덧붙임. 이야기를 들은 하얀 마법사는 자신이 잠시 봐도 되겠냐고 묻고, 용병은 그러라고 함. 하얀 마법사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용병의 왼손을 잡고 지그시 바라봄. 까무잡잡하고 거칠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게 작아서 귀여운 느낌이 있는 손과, 하얗고 가늘게 뻗었지만 용병의 손을 감쌀 만큼 커다란 손이 대비를 이룸. 얼마간 그러고 있던 하얀 마법사는 문득 엄지로 용병의 손등에 있는 문자를 쓸어내리는데, 순간 문자에서 빛이 나며 문자가 서서히 사라져 감. 그와 동시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용병은 주저앉는데, 그런 그를 보며 하얀 마법사는 태연한 목소리로 고함.

'당신에게 오랫동안 작용하고 있던 주술을 풀었습니다. 마나의 흐름이 흐트러질 테니 몸 상태에도 영향이 있겠지요.'
그리고 당황한 채 몸을 일으키려는 용병을 저지하면서 아예 바닥으로 넘어뜨리며 덧붙임.
'이제 와서-라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저주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 타고난 저주입니다. 다른 저주는 그 어떤 복잡한 것이라도 푸는 방법은 있기 마련이지만, 타고난 저주만큼은 어찌할 방도가 없지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올려다보는 용병의 시선을 마주보며 하얀 마법사는 말을 이어감.
'완전히 풀 방법이 없으니, 억누르는 게 고작인 겁니다. 당신에게 걸려 있던 주술도 그런 겁니다. 나쁘지 않은 솜씨더군요. 그렇지만- 나를 막기에는 부족했습니다.'
하얀 마법사의 말이 가진 불길한 울림에 용병은 자신의 위에 올라탄 그를 밀어내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데다 그가 의외의 힘으로 눌러오는 탓에 잘 되지 않음. 어쩔 수 없으니 무기라도 꺼내들어 일단 상황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겨우 손을 움직인 용병은 무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음. 오로라 대신전에는 하얀 마법사를 포함해 마법사들이 많이 있기에, 신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 용병의 표정이 굳는 것을 보며 하얀 마법사는 나지막하게 말함.
'무기는 언제나 소지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잊지 말라고 듣지 않으셨습니까.'
어린 시절 점쟁이 노파에게 들은 말을 쓰게 곱씹는 용병의 얼굴을 하얀 마법사는 한 손으로 쓰다듬어 내림.
'당신이 타고난 저주는- 도화(桃花)라고들 하는 것이지요. 알고 나니 납득이 되었습니다. 금욕적인 데다 감정조차 메마른 듯한 당신인데 어째서 묘하게 색기가 감도는지.'
하얀 마법사의 손이 용병의 얼굴을 지나 쇄골을 훑어 내리고, 가슴에 이르러서는 멈추어 그곳을 가볍게 지분거림. 용병의 입에서 작게 신음이 흘러나옴. 거기에 용병은 스스로도 당황하고, 하얀 마법사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번짐.
'주술은 당신 스스로의 욕구나 성감(性感)까지도 억누르고 있었던 모양이니, 그것을 푼 지금은 당신도 꽤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이제까지 쌓인 것도 있을테고-'
말을 하면서 하얀 마법사가 무릎으로 용병의 다리 사이를 가볍게 누르자 용병에게서 좀더 분명한 신음이 터져나옴. 하얀 마법사의 얼굴에 웃음기가 짙어지고, 동시에 용병에게 닿는 손길도 농밀해지기 시작함.
'벌써부터 이렇게 좋은 반응이라니 이제부터가 기대되는군요. 그럼, 즐겨볼까요.'

01.

오로라는 빛의 마법을 연구하는 단체인데 마법약 연구 부서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그 부서에서 약의 최종 실험을 용병한테 부탁함. 신체 활성을 증대시키는 마법약을 만들었는데 밖에 나가서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써 보고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려 달라고 부탁함. 어차피 오로라 대신전에서 할 일도 없고, 밥만 축내는 손님이 되기도 미안하여 용병은 오로라 연구원들의 부탁을 종종 들어주고는 했고 이번에도 수락함.

그런데 실험을 수행한 그 날 밤, 연구원들도 예상하지 못한 약의 부작용이 뒤늦게 용병에게 나타남. 신체 활성을 촉진시키는 기능이 성적인 부분에서도 나타나 버린 것. 용병은 밤에 자려는데 갑자기 몸이 달아오르는 것에 당황함. 자고 있는 아린에게 들킬까봐 방을 빠져나와 밖에 있는 화장실로 가던 도중, 마침 밖에서 바람을 쐬고 있던 하얀 마법사와 마주침. 얼른 인사만 하고 가려 했지만, 이미 얼굴도 새빨갛고 호흡도 거칠어 누가 봐도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상태였음.

이만 가 보겠다고 웅얼거리는 용병의 말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태도로, 하얀 마법사는 난데없이 용병을 붙잡고 손가락 두 개를 용병의 입 안에 집어넣음. 그렇지 않아도 잔뜩 민감해진 상태에서 입 안에 이물이 들어차자 당황을 넘어 용병은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됨.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묘하게 입 속을 자극하듯 움직이는 것에는 더더욱. 정체 모를 기류 같은 것이 혈관을 타고 내장이며 몸 전체를 휘돌아 나가는 감각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하얀 마법사를 밀어냄. 하얀 마법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용병이 묻기도 전에 설명해 줌. 입에서부터 시작해 당신의 온몸에 마나를 흘려보내 상태를 보았다고. 어떤 문제인지 알 것 같다며, 마법약 부서에서 당신에게 실험을 부탁했다고 들었는데 그 부작용인가 보군요, 라고 말함. 그리고 번들거리는 타액이 묻어난 손가락을 잠시 보는 듯하더니, 도와줄테니 연구실로 따라오라고 함. 용병은 거절하려 했지만, '화장실에서 다른 연구원들에게 들키지 않고 처리하기는 힘들 겁니다.'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감.

마법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몽롱한 흥분 반, 이제부터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 반으로 용병은 하얀 마법사의 연구실로 들어감. 하얀 마법사는 연구실 안쪽에 딸린 작은 방 안, 수수한 침대 위에 용병을 앉히고는, 용병이 낮에 마셨던 것과 비슷해 보이는 물약을 한 병 줌. 어서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방으로 돌아가 숙면을 취하고 싶었던 용병은 단숨에 들이킴. 하얀 마법사는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여기에 조금 앉아있으라고 했지만, 용병은 고맙다고 말하며 재빨리 연구실을 나감. 아니, 그러려고 했음. 용병은 스스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음. 몸 안으로부터 전신을 태워버릴 듯한 열기가 올라오고, 심장의 고동은 더욱 거세졌으며 고동이 한 번 울릴 때마다 혈관을 타고 찌릿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듯했기 때문.

'이게... 무슨...'이라는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한 용병을 하얀 마법사는 침대에 눕힘. '연구원들의 약의 부작용이라면 지금쯤 거의 가라앉았을 겁니다.' 움직이지 못하게 용병을 누르며 그 위에 올라타고서, 하얀 마법사는 여전히 별다른 감정을 찾아볼 수 없는 어조로 이야기함. '부작용 자체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 정도까지 반응이 나타난 건 의외였습니다. 덕분에 궁금해졌지요.' 언제나 무표정으로 굳어 있던 하얀 마법사의 입술이 엷은 미소를 그리고, 호기심을 드러냄. '당신이 어디까지 반응해줄지, 말입니다. 당신이 방금 마신 약은 부작용을 강화해서 만든 겁니다. 부작용을 강화한 약이라니 모순에 언어도단,이지만-' 어린 학생에게 마법 강의라도 하듯 조곤조곤 말하며 하얀 마법사는 부풀어오른 용병의 다리 사이에서 입술까지 손가락으로 훑어 올림. '빛과 어둠도, 세상의 이치도 그런 법이지요. 그럼 어디 한 번, 천천히 볼까요.' 말을 마치고는 아까 상태를 보던 때와 비슷한 손놀림으로, 손가락을 용병의 입안에 집어넣음. 언뜻 비슷해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이번에는 훨씬 노골적으로, 용병의 입안을 휘저으며 희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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