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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썰·감상·해석

스팍커크

by RAYO. 2017. 4. 17.

12.

단 둘만이 살아남은 생지옥에서 무패의 군주로 각성한 커크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스팍. 미러버스, 마피아 AU.

조지 커크가 보스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 권력 체계가 바뀌면서 생기는 불안정함을 틈탄 로뮬란 조직의 습격이 있었다. 그는 보스 자리에 오르자마자 목숨을 잃었고, 임신 중이던 그의 아내 위노나 커크는 칼로 배를 여러 차례 난도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한 발 늦게 크리스토퍼 파이크가 이끄는 동맹 조직이 도착했을 때, 끔찍한 피바다 속에서도 위노나의 숨은 붙어 있었다. 곧장 병원으로 옮겨진 그녀는 얼마 못 가 숨을 거두었으나 무참히 쑤셔진 배 안, 산달도 차지 않은 아이는 놀랍게도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다만 왼쪽 뺨을 가로질러 흉터가 남았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겪어야 했던 참극의 증명이었다. 죽음이 드리운 밤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이는 조부 둘의 이름을 따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라고 불리게 되었다.

파이크의 후견 아래 제임스.T.커크는 성장했다. 그의 성장 과정은 그 자신의 출생과도 같은 험난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아이는 거친 마피아의 세계에서 늘 조롱과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그는 걸려온 시비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총이든, 칼이든, 쇠파이프든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휘두르며 여의치 않으면 맨손으로도 돌격하는 그는 수십 명에게 두들겨 맞고 팔다리가 부러져도 개의치 않았다. 커크의 몸은 늘 상처투성이였지만, 흉터가 남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유일하게 그의 얼굴에 흉터를 새긴, 그가 태어났던 지옥에 비하면 이깟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어느 샌가 그를 따라다니는 별명이 있었다. 봄베이 사파이어. 아름다운 독주. 세상의 빛보다 먼저 고통을 알았던 지독한 파란 눈동자에 꼭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보다 못한 파이크가 보호자와 교육자를 겸해 커크에게 '형제'를 붙여주었다. 파이크와 동맹 관계에 있는 벌칸 조직의 후계자인 스팍은 그렇게 형제라는 명목으로 커크와 만나게 되었다. 진중하며 논리를 중시하고 폭력은 되도록 지양하는 벌칸인 스팍은, 가볍고 감정적이며 툭하면 싸워대는 커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싸울 때 그의 방식은 비이성을 넘어 비정상적이기까지 한 것이었다. 단순히 십대의 혈기라고 치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어떤 종류의 광기가 그 안에 존재했다. 그것은 이성적인 스팍에게 거북하게 다가왔지만, 한편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다분히 마성적이었다.스팍은 자신 안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커크를 될 수 있는 한 피했고, 그런 스팍을 커크 또한 달갑지 않게 여겼다. 둘은 거의 말을 섞지 않았고, 스팍의 형제 노릇은 커크의 싸움을 말리는(실상은 커크와 상대 모두를 제압하는) 것에 그쳤다.

둘의 관계에서 변화는 파국과 함께 찾아왔다.

11.

스팍의 저택에 감금당하는 뱀파이어 커크.

살아있다는 것은 곧 먹는다는 것과 같다. 먹이 사슬 속에서 서로 먹고 먹힘으로써 생명은 그 자신을 이어나간다. 규칙으로 얽힌 이 사슬의 특이점, 먹지 않으며 오로지 살아있는 것의 피를 마심으로써 불멸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들은 뱀파이어라고 불리었다.

뱀파이어 커크는 잘생긴 얼굴과 능글맞은 언변으로 밤마다 동네 처녀들을 꾀어 피를 빨고 다니다가 분노한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사람들을 피해 한참을 달린 그는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우뚝 선 저택과 마주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그곳을 은신처로 삼을 요량으로 커크는 무단 침입을 강행했다.

넓은 저택 내부는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의 눈은 그것에 익숙했기에 이곳저곳 둘러보던 커크는 난데없이 나타난 빛-촛불을 든 스팍과 맞닥뜨렸다. 자신도 인간이 아닌 주제에 뾰족한 귀를 보고 놀란 짧은 순간 커크는 스팍에게 제압당했다. 뱀파이어는 인간보다 두 배로 힘이 셌지만 벌칸은 세 배였기에 커크는 꼼짝할 수 없었다. 빛도 없이 어둠 속을 거침없이 걸어나가던 발소리와, 자신의 밑에 깔려 버둥대는 인간보다 강한 힘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스팍은 커크의 턱을 붙잡고 입을 벌려 송곳니를 확인했다. 뱀파이어. 스팍이 자신의 추론의 결과를 보며 중얼거리자 커크는 이대로 화형장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그러나 잔머리의 귀재답게 그는 곧 안색을 바꾸어 만면에 미소를 띠고는 천연덕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안녕, 아름다운 밤이죠?"
"가택 무단침입범의 변명으로는 적절하지 않군요."
"무단침입이라뇨, 풍랑에 지친 나그네가 잠시 처마 밑에 쉬어가려 했을 뿐인 걸요."

자신에게 해를 끼쳤을지도 모를 현행범을 체포한 것 치고 담담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사실만을 적시하는 스팍에게, 커크는 체포된 범죄자 주제에 눈 하나 깜짝 않고 청산유수와도 같은 언변을 펼쳤다. 뻔뻔한 커크의 태도가 황당할 법도 하건만 표정에 한 점의 변화도 없는 스팍이 맞받아쳤다.

"잠시 쉬어가려는 나그네가 창문을 깨고 자물쇠를 부수는 이를 가리키는 단어인 줄은 몰랐군요. 제가 알기로 그 단어는 강도라고 합니다만."
"하하, 문 열어줄 사람이 없는 줄 알았죠. 이렇게 멋진 집주인이 계신 줄 몰랐네요."

딱딱한 스팍의 대꾸에도 커크는 기죽지 않고 싱글거리며, 가볍게 아부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거주자가 있든 없든 간에 당신이 사유지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보안관에게 당신의 신병을 인도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보안관은 안 돼요."

10.

교관 스팍 X 생도 커크로 각각 다른 거부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선을 넘고 싶어하는 관계가 보고 싶다.

커크는 지속적인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그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고, 그래서 거부 반응을 보임. 집착적인 애정이라면 더 심함.

벌칸은 감정이 없는 종족이 아님. 인간보다 더 격렬한 감정을 오랫동안 싸하올린 이성과 논리로 통제하고 있을 뿐.

커크는 스팍의 집요한 시선 속에서 숭고한 인내의 껍데기를 가진 지속적인 애정과, 더 깊은 곳에 들끓는 질척한 집착을 본능적으로 감지함. 전자에서 커크는 어느 정도 희망을 보았지만 동시에 거부감을 느꼈고, 후자는 커크에게 혐오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어떤 성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킴.

견고한 이성과 통제, 숭고한 인내와 금욕의 벽이 격렬한 비이성적 충동과 폭력성, 원초적인 욕망과 등을 맞대어 스팍이라는 존재를 구성하고 있었음. 이 기묘한 존재 방식이 커크에게 성적 흥분을 유발함.

자신에게 와 닿는 스팍의 시선, 손길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애정 혹은 욕망에 커크는 진저리 치면서도 한편으로 고양감을 만끽함. 벌칸의 역사를 가로질러 새겨진 위대한 이성이 자신의 위에서 무너지는 순간은 오르가즘과도 같은 황홀한 광경이라고 커크는 생각함.

09.

경호원 스팍 X 비서 커크.

안경에 회색 원버튼 수트, 서류철을 든 비서 커크는 흔해 빠진, 사무적이기 이를 데 없는 차림을 하고도 섹시했음. 금발의 미인 비서로 사내에 소문 자자한 그는 금욕적인 벌칸 스팍을 동하게 만드는 유일한 이였음. 여직원, 남직원 가릴 것 없이 자주 입방아에 오르는 커크의 소문에 스팍은 관심 없는 척했지만 뒤로는 착실하게 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음. 사과를 좋아한다, 여성 편력이 화려하며 쌍둥이 여직원과 쓰리썸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퇴근 시간을 두어 시간 넘긴 추가 근무를 마치고 윗층에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스팍은 로비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음. 계기판의 숫자가 차례차례 바뀌다가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림. 직원들은 거의 퇴근했을 시간이기에 엘리베이터가 비었을 것이라는 스팍의 예상과는 달리 안에는 사람이 있었음. 커크였음.

퇴근하는 길인지 셔츠 가장 윗 단추를 풀어헤친 커크는 다소 나른한 분위기를 풍겼음. 무표정을 가장한 채 집요하게 쏟아지는 스팍의 시선에 커크가 픽 웃더니 안경을 벗어 다리 끝을 살짝 물고는 눈으로 스팍을 훑음. 금욕적인 얼굴 이면에 들끓는 욕망이, 단정한 수트 아래로 언뜻 비치는 야성미를 간직한 탄탄한 몸이 커크에게도 퍽 유혹적으로 다가옴.

가지런히 빗어넘긴 머리를 쓸어올려 흐트러뜨리던 커크의 파란 눈동자가 도발적인 빛을 띠는가 싶더니, 돌연 그가 스팍의 넥타이를 쥐어 끌어당김. 입술이 맞부딪치며 두 사람의 혀가 정신없이 얽힘. 거친 키스였음.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내 잡아먹을 기세로 키스하다가 윗층에 도착해 오피스에서 격하게 섹스하는 스팍커크 보고 싶다.

08.

비욘드를 처음 봤을 때 스팍의 more or less라는 대사를 moralless로 들었었다. 스팍커크 모럴 없는 하극상 폭풍섹스했으면…(아무말 여긴 직장이고 난 네 상관이야, 스팍! 지금은 제 밑에 계시지 않습니까. 이렇게나 흐트러진 모습으로.

07.

스팍 X 인어 커크. 피치피치핏치 설정 기반.

바닷속 인어왕국의 왕자인 커크는 성인이 되기 전에 육지로 올라가선 안 된다는 규율을 어기고 몰래 성을 나왔다가 커다란 유람선과 맞닥뜨림. 눈을 빛내며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과 화려한 불빛이 수놓은 해안선을 구경하던 커크는 들뜬 마음으로 노래를 부름.

인어의 노래는 아름다웠지만 웃고 떠들기 바빴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고, 단 한 명-스팍만이 그 선율을 들었음. 어머니의 고향인 지구를 방문해 유람선을 타고 관광 중이던 그는 노랫소리를 따라 선실 밖으로 나섰고, 물 위로 상반신만 내밀고 있던 커크와 눈이 마주침. 자기 또래의 소년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상황의 비논리성보다 먼저, 푸른 지구, 그곳에 물결치는 바다와 같이 고운 눈동자라는 생각이 스팍의 머릿속을 채웠음.

커크는 스팍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봄. 지상에 속한 그에게 인어인 자신의 존재를 숨겨 마땅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음. 처음으로 만난 바다 밖의 주민, 배 안팎의 많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자신의 노래를 들어준 소년의 눈동자는 바다와 육지 위에 공평하게 내린 밤과 같이 고요했고 커크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음.

그 순간 유람선이 암초에 부딪혔고, 선체가 크게 기울며 선실 밖에 있던 스팍은 바다로 떨어짐. 낙하의 충격으로 바닷속 깊이 한없이 가라앉아 가는 스팍을 커크가 겨우 붙잠음. 유람선의 좌초로 바다가 크게 일렁였고 거센 파도 때문에 헤엄을 잘 치는 커크도 스팍을 데리고 육지 쪽으로 나아가는 데 애를 먹음.

고군분투한 끝에 커크는 육지에 도달해 모래사장에 스팍을 뉘일 수 있었지만, 이미 스팍은 바닷물을 너무 많이 마신데다 저체온증까지 오기 시작해 온몸이 얼음장처럼 찼음. 죽어가는 인간(스팍은 인간이 아닌 하프벌칸이었지만 인어인 커크는 지상의 종족을 구분하지 못했음)을 살릴 방법을 알 리가 없는 커크는 다급한 마음에 인어왕국의 보물이자 후계자의 증표이기도 한 진주에 소원을 빔.

진주가 영롱한 빛을 발하고, 스팍이 콜록거리며 바닷물을 뱉어냄. 눈앞의 소년이 살아났다는 기쁨도 잠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에 커크는 급히 바닷물 속으로 뛰어듦.

바닷가를 지나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스팍이 깨어나자마자 떠올린 것은 바다 위의 소년이었음. 비논리적인 그와의 만남이 물에 빠져 의식을 잃었을 때 꾼 꿈일까 싶었지만 손 안에 놓인, 소년의 눈동자와 꼭 닮은 푸른 진주가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음.

왕자인 커크가 규율을 어기고 물 밖으로 나간데다 보물인 진주까지 잃어버려 인어왕국은 발칵 뒤집힘. 그러나 사건의 당사자는 왕국이며 후계자가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며, 성인이 되어 물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림.인어라면 누구나 그렇듯 원래도 커크는 노래를 좋아했는데, 스팍과의 만남 이후 밤만 되었다 하면 밤을 닮은 고요한 눈동자에 대해 노래를 불러재낌. 다만 진주를 잃어버린 인어는 음치가 되었기에 커크의 노래는 이전과 달리 소음 그 자체였고 이 때문에 본즈를 비롯한 측근들은 소음 공해로 죽어남.마침내 성인이 된 커크는 진주(를 가진 스팍)를 찾아 지상으로 향하고, 커크와 같은 인어지만 배(Ship)에 매료되어 엔지니어로서 지상에서의 삶을 택한 스코티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됨. 그 후 전설로만 치부되었던 인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해양생물학자가 된 스팍과 다시 만나고 연애하는 게 보고 싶다.

06.

프라임스팍의 기억을 이어받은 후손 스팍이 프라임커크의 복제인간인 커크와 만나는 게 보고 싶다.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Vivid 설정 기반.

조상의 기억과 유전형질을 몇 대 후의 자손이 그대로 이어받는 것은 드물게 나타나는 체질임. 성장할수록 이어받은 기억은 옅어지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기억들이 그 자리를 채우지만 어릴 때는 이어받은 기억과 자신의 기억을 구분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기도 함.

프라임커크와 프라임스팍은 연인이자, 같은 함선의 함장과 부함장이었음. 스팍의 시대로부터 몇 세기 앞선 그들의 시대는 전란의 소용돌이 가운데 자리했음. 프라임커크는 뛰어난 함장이었으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른 모든 대원들을 살리는 대신 스스로를 희생함. 젊은 나이에 연인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찬가지로 많지 않은 나이에 전장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프라임스팍이 느꼈던 절망과 슬픔, 그리움이 그대로 스팍의 안에 존재했음.

커크는 칸의 경우와 비슷하게 병력으로 사용하기 위한 인조생명 연구의 결과물이었음. 칸과 그 동료들이 유전자 개량을 통해 만들어진 반면, 번거롭게 유전자를 조작할 필요 없이 과거에 존재했던 우수한 인물의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해 대량 생산하자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그 첫번째 대상은 영웅 제임스.T.커크 함장이었음.

이 프로젝트가 알려지자 생명 윤리와 관련해 거센 비난이 일었고, 연구팀은 와해되기에 이름. 그 시점에서 그들은 이미 프로토타입의 배양에 성공한 상태였지만 세간에는 프로젝트의 성공체는 없는 것으로 발표됨. 약물을 통해 10세 정도까지 발육이 이루어진 실험체는 비밀리에 스타플릿 상부로 인도되어 기밀 사항 중 하나로 보관 조치됨.

몇 세기가 지나 23세기, 아버지 사렉 대사를 따라 스타플릿 본부를 방문한 열두 살의 스팍은 아버지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중, 선조의 기억과 감정이 멋대로 되살아남과 동시에 강한 두통을 느낌. 가끔 겪는 일이었는데 이 현상에 의료 조치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조용히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스팍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함.

유달리 오래 지속되는 두통에 손으로 이마를 짚고 얼마나 걸었을까, 스팍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본부 깊숙한 곳까지 와 있었음. 처음 있던 장소에서 어디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돌이켜 보며 숨을 고르던 스팍이 복도에 늘어선 문 중 하나에 기댔을 때, 불시에 문이 열림.

그 바람에 스팍은 뒤로 나동그라졌다가 곧 몸을 추스려 일어남.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는 다시 주저앉을 뻔함. 어두운 방은 기계장치로 가득했고 그 중심에는 희미한 푸른 빛을 내는 원통이, 그 안에는 스팍이 이어받은 기억과 꼭 같은 소년이 있었음. 소년과 마주하는 순간 해일처럼 밀려드는 기억과 감정에 비틀거리며 스팍은 겨우 한 단어를 중얼거림.

…짐.

순간 원통 속의 소년이 눈을 떴음.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에 대답이라도 하듯. 몇백년의 시간을 넘어 '스팍'과 '커크'는 그렇게 다시 만남.

어리기에 감정 통제도 미숙하고 선조의 기억의 영향력이 강해 프라임스팍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스팍과 달리, 깨어난 커크는 프라임커크의 기억은 이어받지 않았고 유전형질만 같기에 스팍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바깥 세상과 사람들에 더 흥미를 보임.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스팍에게 "정신 차려. 전쟁은 끝났고, 네 머릿속의 그들은 죽었고, 지금은 23세기야." 하고 쏘아붙이지만 막상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몇 번 데이고 나자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키는 스팍을 의식하기 시작함.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스스로가 선조, 본체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서로를 선택해 연인이 됨. 평화의 시대에서 전생에 그토록 염원했으나 이루지 못한 행복을 누리는 게 보고 싶다.

05.

꼬마 스팍커크가 같은 초등학교 다녔으면. 벌칸 학교에서 전학 온 스팍은 원기둥 넓이 구하라는 문제를 적분으로 풀고 무슨 말만 했다 하면 일로지컬 타령. 담임인 본즈는 한숨을 쉬며 커크에게 사과를 쥐어주고 스팍이 인간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는데…

04.

요술봉 대신 페이저 건을 들고 악당을 격퇴하는 23세기 마법소년 스팍커크 보고 싶다,는 망상.

커크는 발랄하게 Beam me up! 외치고 파란 빛에 휩싸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례차례 변신함. 변신 도구인 커뮤니케이터에 깃들어 있는 마스코트는 스코티로, 커크의 변신이 비주얼 면에서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것은 스코티의 취향이 200% 반영되었기 때문. 변신 시 본인은 상큼하다고 주장하나 실상은 어설픈-두 눈을 동시에 감는 윙크는 덤.

반면 스팍은 은은한 초록 빛에 잠깐 감싸이고 나면 변신 끝으로, 변신 구호나 동작도 없음. 커크와 스코티는 언제나 구호와 동작을 고안해 같이 하자며 스팍을 조르지만, 스팍은 일로지컬하다는 말로 권유를 일축하고는 함. 스팍의 마스코트는 우후라. 둘의 마법소년 복장은 서바이벌 수트인데 아래는 반바지에 니삭스.

본래 스팍은 커크와는 다른 마법사 벌칸의 차원 출신. 로뮬란의 습격으로 벌칸이 멸망하게 되자 차원을 이동하는 특수 능력을 가진 아만다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스팍을 다른 차원-그녀가 원래 있던 마법이 없는 차원으로 날려보냄. 차원을 건너는 과정의 길잡이 역할로 주어진 것이 마스코트 스코티와 우후라.

다른 차원에 도착한 스팍이 처음으로 만난 이가 커크. 그가 멋대로 몰고 나온 자동차는 무면허 질주 후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멈춰섰는데, 차원 이동한 스팍이 자동차 위로 떨어짐. 그 여파로 차는 벼랑 아래로 추락했고, 같은 운명이 될 뻔했던 스팍의 손을 커크가 잡아서 저지함.

그때 거듭된 생명의 위기 탓에 한계에 달한 스팍의 정신이 강제적으로 본드를 형성함. 본드라고는 해도 정식 절차를 밟지 않았기에 두 소년은 불완전하게 연결됨. 이 때문에 커크는 스팍의 마법의 힘을 나눠 갖게 되고 스팍은 커크와 함께 변신하지 않으면 마법을 쓸 수 없게 됨.

03.

색청 스팍과 파란 목소리를 가진 커크.

색청이란 공감각 현상의 하나로 소리를 들으면 눈에 보이는 색으로 인지하는 것. 일상속 너무 많은 소리들을 그대로 듣고있으면 시야가 색들로 가득 차 어지러워지기에, 늘 헤드폰을 쓰고 일정한 색의 소리만을 듣는 스팍에게 어느 날 들려온 선명하게 파란 목소리. 청명하면서 수영장 깊은 곳의 고요함과도 닮은 그 색을 따라 고개를 돌린 스팍은 파란 목소리를 그대로 담은 눈동자와 마주하고. 파란 목소리와 눈동자, 그 소리와 색에 홀린 듯 커크 주변을 맴도는 스팍이 보고 싶다.

02. 알카트라즈

교도관 스팍과 누명을 쓴 수감자 커크.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감옥 알카트라즈. 샌프란시스코 근방의 섬에 위치한 이 교도소는 탈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교도관 스팍은 새 재소자로 26세의 제임스.T.커크를 맞이한다. 그의 죄목은 살인이었고, 피해자의 수가 그 자신의 나이보다 많았다. 사형 제도가 폐지되었기에 그는 종신형 판결을 받았고, 살아서는 감옥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커크의 살인죄는 누명으로, 실제로는 칸 누니엔 싱이 저지른 것이었다. 스타플릿 상부에서 극비로 시행한 인간 강화 실험의 성공체인 칸은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실험 관계자들을 다수 살해한 끝에 알카트라즈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스타플릿 상부의 몇몇이 칸의 힘을 가둔 채 썩히기보다는 정적의 제거에 이용하자는 견해를 내놓았고, 그의 동료들-다른 실험체들을 인질로 삼아 칸을 복종시키기에 이른다. 칸이 석방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의 죄를 대신 뒤집어써야 했고, 커크가 그 대상이 되었다.

스타플릿 상부가 상대인 이상 합법적인 절차로 그가 누명을 벗을 가능성은 없었다. 커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썩거나, 탈옥하거나. 알카트라즈에서 후자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커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보일 심산이었다. 같은 불가능이라면 그에게는 법정 싸움보다는 탈옥이 더 현실성이 있기는 했다.

원칙주의자인 스팍은 커크가 다른 수감자들에게 괴롭힘당할 때마다 구해 주면서 그와 안면을 트게 된다. 커크의 이야기를 들은 스팍은 증거가 없는데도 그의 이야기에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수많은 재소자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커크는 어느 새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스팍에게 끌리던 커크는 어느 날 스팍과 관계를 가진 후 그가 잠든 틈을 타 감옥의 설계도를 찾아낼 계획을 세운다. 오늘밤 방으로 찾아가게 해 달라는 커크의 관계 제의를 수락하느냐에 따라 따라 엔딩이 분기한다.

1) 관계를 거부한다
: 벌칸 엔딩. 커크는 탈옥하지 못한다. 스팍은 커크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스타플릿 상부를 조사해 증거를 찾아내려 하지만 실패한다. 상부의 입막음 조치로 스팍은 교도관의 지위를 잃어 알카트라즈를 떠나고 커크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 남게 된다. 벌칸의 논리는 부조리한 인간의 세상과는 어울릴 수 없었다.

2) 관계를 수락한다

2-1) 커크의 수갑을 풀어주고 부드러운 관계를 가진다
: 인간 엔딩. 비인간적인 폭력이 지배하는 감옥 안이었지만 인간적인 사랑이 존재했다. 스팍과 커크는 자유를 찾아 함께 알카트라즈를 탈출한다. 평생 도망자 신세가 되었기에 자유를 찾아서라는 말은 비논리적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무척 인간적이었다.

2-2) 커크의 수갑을 풀어주지 않고 거친 관계를 가진다
: 로뮬란 엔딩. 감옥을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폭력에 스팍은 동화되고 만다. 폭력은 로뮬란이 선택했으며 벌칸의 안에도 잠재되어 있는 것이었다. 커크는 탈옥하지만 스팍이 그 뒤를 쫓는다. 커크를 알카트라즈에, 그의 커다란 새장에 평생 가둬두기 위해.

01. 제인 에어

황량한 시골 마을 깊은 곳 주민들이 모두 꺼리는 음침한 저택의 주인 스팍과 그 저택에 새로 온 가정교사 커크.

스팍은 죽은 친우의 아이인 체콥(8-9살 정도)을 맡아주고 있어 커크는 체콥의 가정교사로 온 것. 마을 주민들 사이에 흡혈귀라는 소문까지 있는(사실은 시골이라 사람들이 이종족에 무지하고 미신을 믿어서 그런 것) 저택의 주인, 스팍은 소문대로 창백한 얼굴에 뾰족한 귀, 늘 굳은 표정이었고, 저택을 비우는 일이 많은 그 대신 실질적으로 저택을 관리하는 하녀장(남자) 술루 또한 깐깐하기 그지없었음.

저택은 음울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었고 때때로 한밤중이면 울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음. 그때마다 커크는 소리를 따라가 원인을 알아내 보려고 했지만 늘상 어디선가 차가운 태도의 하녀 우후라가 나타나 그를 제지하고, 잘못 들었다거나 숲에 사는 짐승의 소리일 뿐이라며 일축함.

어둠이 깔린 저택에서 고용인들은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고 그곳에서 커크가 가르치는 아이, 체콥만이 밝았음. 러시아에서 건너온지 얼마 되지 않아 어눌한 영어로 쩐쨍님! 하며 커크에게 달려와 안기곤 하는 그는 금빛 곱슬머리를 가진 사랑스러운 소년이었음. 어두운 저택과 그곳에 사는 햇살 같은 아이의 대비는 기묘한 느낌이었음.

하녀장 술루가 전한 저택 주인의 교육 방침은 하루종일 글공부만 시키는 것이 아니었음. 체콥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승마를 비롯한 스포츠며 춤, 그림 등을 배우며 보냈고, 이러한 것들의 지도는 다른 방문 교사들의 몫이었기에 커크에게는 혼자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았음.

그때마다 커크는 넓은 저택을 탐험하고는 함. 저택 곳곳을 돌아다니다 하녀장 술루나 하녀 우후라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주의를 받고는 했지만 커크는 굴하지 않음. 사람도 별로 없는 넓은 저택에서 길을 잃기라도 하면 위험하다는 고용인들의 말은 커크에게는 기이할 정도로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을 넘어 수상쩍기 짝이 없는 핑계에 불과했음.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이는 방문마다 열어 방들을 구경하던 커크는 한 방에서 피아노를 발견함. 새까만 피아노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듯 먼지를 뒤집어쓴 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급품임을 짐작케 하는 우아한 분위기를 지님. 조심스럽게 커크가 뚜껑을 열자 붉은 건반 덮개가 모습을 드러냄. 덮개를 걷어내기 위해 손을 뻗는데 그 순간 커크보다 먼저 덮개를 쥔 손이 있었음. 놀란 커크가 뒤돌아보자 그곳에는 단정하게 정돈된 검은 머리에 치켜올라간 눈썹, 창백한 얼굴을 가진 남자-스팍이 서 있었음.

스팍은 저택을 비우는 일이 많았고, 고용을 포함한 저택의 관리는 하녀장 술루가 도맡아 했기 때문에 커크는 그때까지 자신의 고용주인 스팍을 본 적이 없었음. 마을 주민들과 체콥으로부터 스팍의 귀가 뾰족하다는 사실은 들었지만, 마침 스팍은 모자를 쓰고 있어 귀가 가려진 상태였음.

눈앞의 남자가 저택의 주인이자 자신의 고용주인 줄 모른 채, 무뚝뚝하게 굳은 얼굴의 스팍을 보고 커크는 인상이 저따위인 걸 보니 이 집 사람(고용인)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이 집 사람들이 다 그렇듯 저 사람도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을텐데 또 뭐라고 변명할지 고민함. 그러나 남자의 행동은 커크의 예상과는 달랐음. 그의 손이 미끄러지듯 덮개를 벗겨내고 가지런한 흑백의 건반이 모습을 드러냄.

"앉아서 연주해 보십시오."
"…예?"
"거기 앉아서 피아노를 연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커크가 당황해 되묻는 이유를, 버릇이 되어 무심코 튀어나온 명령조 때문이라고 판단한 스팍이 보다 정중한 어투로 재차 요구함. 사실 커크는 스팍의 말투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과 요구에 당황한 것뿐이었는데, 스팍이 다시 한 번 청하자 뜬금 없는 일을 다 시킨다고 생각하면서도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함.

커크가 피아노를 배운 것은 교사로서 음악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로 특별히 피아노에 흥미는 없었기에 그가 연주할 줄 아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곡들뿐이었음. 길지 않은 연주가 끝나고 커크가 피아노에서 손을 떼자, 심사하듯 연주를 듣던 스팍이 심사평을 내놓았음.

"초등 교원 교육 과정 기준으로 평균 정도군요. 체콥을 지도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시간을 보니 이만 실례해야 할 것 같군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커크 선생."

좋은 밤 보내시길. 높낮이도 없이 딱딱하게 말하던 남자가 속삭이듯 건넨 인사에 커크가 움찔함. 그가 굳어 있는 사이, 벗겨낼 때와 마찬가지로 매끄러운 동작으로 덮개가 씌워짐. 홀린 듯 그 움직임을 좇던 커크는 남자의 희고 긴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함. 인사에 답하는 것도 잊은 채,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에 대한 상념에 빠져 있던 커크는 문득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낌. 창백한 얼굴에 속삭이는 입술, 하얀 손가락이- 정연한 건반 위 붉은 천이 어딘지 모르게 색정적이었음.

고풍스러운 저택, 엄격하게 관리되는 고용인들과 규칙들은 금욕적인 성질의 것이었으나 그 이면의 어둠과 괴기, 비밀은 원초적인 욕망과 닮은 바가 있어 때로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냄. 도덕과 이성, 통제를 추구하는 저택이 그 속에 아이러니하게도 부도덕한 열망과 통제되지 않는 감정을 품은 가운데 커크와 스팍은 서로 끌리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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