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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썰·감상·해석

샹루

by RAYO. 2023. 9. 18.

최종수정 2023. 10. 8

26.

눈이다.

제 위에서 바르작대던 소년이 뜬금없이 내뱉은 말에, 샹크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호오, 루피. 딴데를 볼 여유가 있단 말이지.

심술궃게 말하며 가느다란 허리를 한 팔로 끌어당기자, 흐응, 하고 신음이 루피의 잇새로 샜다. 몸을 떨며 안쪽의 압박감을 견디는 아이의 배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샹크스는 선실 창 너머를 힐끗 보았다. 소리도 없이, 그러나 분명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으나.

눈은, 하얘서 좋아…

눈이 온다고 유난을 떠는 걸 보면 아이는 아이였다. 말을 하기도 버거워 등에 두른 팔에 힘을 주고 제게 매달려 오는 루피를 마주 안으면서, 샹크스는 속삭였다.

눈앞이 하얘지도록 가 버리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하얀 눈처럼 순수하고 무구한 아이와 달리, 저는 시커먼 어른이라 속으로 자조하면서. 눈처럼 새하얀 절정이 소년을 휩쓸고 나면, 제 검은 망토에, 그 품에 루피를 안은 채 서로 기대고 싶었다. 그러고는 함께 눈을 보자. 따뜻한 코코아에 마시멜로라도 띄워 주면 너는 사르르 웃겠지.

하얀 너에게, 검은 나에게, 눈이 내린다.

25.

샹크스와 루피의 컬러 파레트가 머리(빨강), 옷(검정)-머리(검정), 옷(빨강)으로 대칭을 이루는 점이 좋다. 나중에 루피가 검은 망토를 걸치면서 샹크스와 닮은 모습이 되는 것도, 루피가 해적으로서 하는 모험의 시작과 끝에 샹크스가 있음을 보여주는 듯해 좋다.

24.

샹크스는 본편에 안 나와도 오프닝, 엔딩에 꼭 들어가 있다는 점이 루피에게 샹크스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한다. 샹크스가 준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이상, 오래 떨어져 있어도 루피는 샹크스를 잊은 적이 없겠지.

23.

먼저 키스마크를 남기는 쪽은 루피일 것 같다. 샹크스는 루피가 윗옷을 열고 다녀서 상체가 노출되니 밀짚모자 해적단 선장의 체면을 생각해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데, 루피가 샹크스의 목에 뚜렷한 자국을 새기겠지. 너 이게 뭔지 아냐고 샹크스가 묻자, 루피는 영광의 상처이자 사나이의 증표라고 어디서 잘못 배운 대로 답할 것 같다.

그러자 샹크스는 요놈 봐라, 하고 픽 웃으며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되갚듯 루피의 목에 선명한 키스마크를 만드는데. 두 선장이 나란히 단 자국을 보며, 어젯밤에 뭐 했는지 아주 광고를 한다고 야유하는 빨간머리 해적단과, 한숨 쉬는 밀짚모자 해적단.

22.

현대 AU로 루피한테 옷 사 주는 샹크스가 보고 싶다. 루피는 옷 같은 건 샹크스가 다 골라도 상관없으니 고기나 먹으러 가자고 보챘지만, 샹크스는 잘 어울리는지 입어봐야 한다, 고기는 시착이 끝나야 먹을 수 있다며 단호하겠지.

루피가 옷을 들고 피팅룸에 들어갔더니 묘하게 넓은데 거울이 없고, 거기에 샹크스가 따라들어올 것 같다. 거울이 없으니 어울리는지 내가 봐 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렇게 루피를 예쁘게 입혔다가 예쁘게 벗기며 옷 쇼핑을 즐기는 샹크스. 한 팔로 옷을 입히는 건 잘 못하면서 벗기는 건 잘했으면 좋겠다.

21.

샹크스는 체격이 크고 듬직한 반면, 루피는 작고 가늘어서. 샹크스가 한 팔로도 루피의 허리를 가뿐히 감싸고, 키스할 때면 혀끼리 서로 얽힌다기보다는 샹크스의 혀가 루피의 작은 입 안을 가득 채우며 일방적으로 침략, 능욕하는 모양새인 게 보고 싶다. 샹크스가 루피 위에 올라탄 채 오른손을 맞잡으면, 그 큰 손에 루피의 손이 완전히 덮여서 가려지는 것도 좋다.

20.

현대 AU로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고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만 루피에게 키스해 주는 샹크스가 보고 싶다. 그리고 샹크스와 만나지 못한 2년동안, 빨간 머리의 남자만 골라 만나서는 샹크스가 제게 그랬듯 모래시계가 허락하는 시간만큼만 키스하는 루피.

둘의 재회는 루피가 열아홉 살이 되던 날, 샹크스가 모래시계를 박살내고는 루피의 턱을 거칠게 잡아채 입맞춤과 동시에 이루어지겠지. 부서진 시계에서 쏟아지는 모래처럼, 시간 제한으로 억눌러 왔던 욕망을 한꺼번에 발산하기.

19.

아, 모자.
벗기면 안 되나?
내 보물이니까.
흐음?
샹크스가 준 거니까, 없으면 쓸쓸해.
내가 눈앞에 있는데도? 나보다 모자가 소중한가?
으음… 몰라, 둘 다 좋아! 둘 다 있어야 돼.
하핫! 그래, 해적은 욕심쟁이지. 원하는 건 다 가지는 거야.
그렇게 밀짚모자를 벗기지 않고 살짝 젖히며 키스하는 샹크스와 루피.

18.

카지노 주인 샹크스와, 양부모가 진 거액의 빚을 떠안은 루피가 보고 싶다. 타고난 직감과 행운으로 게임을 이겨나가는 루피를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막판에 직접 나서서 꺾어놓는 샹크스.

평생 노예로 사느냐 마느냐가 걸린 판에서도 주저하는 법이 없고, 제게 졌을 때도 어라, 져 버렸네. 정도로만 반응하는 루피가 흥미로워서, 나를 이기면 빚을 탕감해 주고 여기서 나가게 해 주겠지만, 못 이기면 내 밑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거래를 제안하겠지.

제게 몇 번이고 도전했지만 이기지를 못하고 나가지도 못해 씩씩대는 루피의 허리를 쓸면서, 너는 귀여우니까 특별 대우해 주겠다고, 더 재미있는 다른 게임을 해 보겠냐고 유혹하기. 키스 한 번에 1,000베리, 섹스 한 번에 10,000베리로 쳐 주겠다며. 계산은 정확해야 하니 허벅지 안쪽에 그날의 절정 횟수를 표시하고.

17.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루피와 놀아주는 게 싫지는 않지만, 목욕물에 축 늘어진 채 제게 기대오는 루피도 좋다고 생각하는 샹크스가 보고 싶다. 물 밖에서는 몸에 손대면 간지럽다고 난리를 칠 루피가, 물에서는 따끈하게 익은 보드라운 살결을 씻기면서 더듬어도 얌전해서 마음껏 만지기.

16.

야쿠자 샹크스에게 키워진 루피가 보고 싶다. 스트롱 월드에서처럼 붉은 셔츠에 검은 양복과 외투를 차려입은 채, 검은 옷의 거구들 사이에 조그만 게 대장이라고 선 모양새가 퍽 귀엽다고 샹크스는 생각하겠지. 싸울 때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어던진 채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점, 그러다가도 샹크스를 보면 풀어진 얼굴로 웃는 점도 사랑스럽다 여기기.

15.

샹크스, 샹크스 하고 어린 루피가 조르듯이 부르면 샹크스가 몸을 낮춰 루피와 눈높이를 맞추며 왜? 하는데, 그때 원숭이가 나무를 오르듯 샹크스의 어깨 위로 쪼르르 올라가 목말을 타는 루피로 샹루가 보고 싶다.

항해에 데려가 달라고 조를 때는 샹크스의 바짓단을 붙든 채 다리에, 모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샹크스의 팔에 안긴 채 그 가슴팍에, 둘만의 후샤 마을 모험을 떠날 때는 샹크스의 어깨에 탄 채 그의 밀짚모자 위에 턱을 올려놓는 루피.

14.

샹크스가 루피에게 밀짚모자를 맡긴 건 자유로운 해적이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라는 기대에서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제 오랫동안 보지 못할 귀여운 아이를 저 대신 밀짚모자가 지켜주기를 바라며 부적처럼 건넨 것도 있지 않았을까.

13.

빨간머리 놈이 너한테 못된 것만 가르쳤구나.

애를 다 버려놨다는 할아버지 가프의 한숨에도, 루피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샹크스는 좋은 녀석이야. 맹랑한 대꾸는 소년의 진심이었고, 실제로 샹크스는 호인이라 할 만한 유쾌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가프 식대로 표현하자면, 빌어먹을 자유로운 성정이 문제였다. 즐거운 일을 해라, 원하는 일을 해라가 입버릇인 남자는 루피가 궁금해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르쳐 주었다. 학교 담을 넘는 법, 수업에 나가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법부터 술과 담배에 이르기까지.

가프는 몰랐지만, 루피는 키스와 섹스도 샹크스에게 배웠다. 그가 달고 사는 술을 마셔보고 싶다고 했더니, 대뜸 입에서 입으로 한 모금 넘겨 주기에. 으엑, 써. 불평하는 루피에게 남자는 웃으며 너는 달구나, 했고, 치기와 취기로 거듭 혀를 섞다 보니 어느샌가 살도 섞고 있었더랬다.

샹크스랑 있으면 즐거워. 샹크스를 원해. 소년에게 자유의 즐거움을 가르친 남자는 책임을 가르치지 않았다. 제 품에 있는 이상, 그런 건 알 필요가 없었으므로. 나쁜 어른과, 착하지 않은 아이. 구제할 도리 없는 만남이었다.

12.

어린 루피가 자신의 각오를 증명하기 위해 상처를 낸 곳이 샹크스와 같은 왼쪽 눈가였다는 점은, 루피가 샹크스를 동경하고 그의 영향을 받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루피에게는 샹크스 얼굴의 흉터까지도 멋있게 보였던 걸까.

11.

샹크스와 어린 루피가 해안을 탐험하며 놀다가,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동굴로 몸을 피하는 게 보고 싶다. 천둥번개 소리에 깜짝 놀란 루피가 샹크스의 품으로 파고들자, 샹크스는 고무니까 번개는 안 통할 텐데, 중얼거리면서도 루피를 꼭 안고 토닥여 주겠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사이 제 품에서 잠든 루피의 얼굴이 먹구름을 가르며 드러난 말간 해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루피를 업고 마을로 돌아가기.

10.

어린 루피가 고무고무 열매를 먹은 뒤, 탄력 있으면서 쭉쭉 늘어나는 루피의 몸을 만지는 데 맛들린 샹크스가 보고 싶다. 슬라임을 주무르듯, 루피를 안은 채 말랑한 볼과 따끈한 배 같은 곳을 손으로 조물조물하기. 루피는 그만하라며 화내다가도, 샹크스가 입에 간식거리를 하나씩 물려주면 조용해지고.

09.

배 위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와 바람의 소리를 듣던 샹크스가 후샤 마을에 와 제 품 안에서 잠든 루피를 코앞에서 마주보고, 작은 숨소리에 귀기울이는 순간. 바다에는 자유가, 땅에는 안식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그럼에도 제가 땅 위의 아이를 찾아가는 대신 아이가 바다 위의 저를 찾아오도록 만드는 순간. 조그만 안식을 위대한 자유로 바꾸어 놓는 순간이 좋다.

08. 해적과 인어

샹크스는 해안을 거닐던 중 지상이 궁금해 섬 근처를 기웃거리던 인어 루피를 만났음. 인간인 저를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배고픔을 호소하는 루피에게 샹크스가 빵이라도 나눠주려 했더니, 루피는 할아버지도 에이스도 사보도 지상의 음식은 절대 먹지 말랬다며 거절함.

인어가 지상의 음식을 먹으면 바다의 저주를 받아 물에 닿아도 꼬리 달린 인어로 변하지 않고, 물 속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날조 설정. 결국 물고기를 잡아 나눠 먹는데, 루피는 해적 샹크스의 모험 이야기에 매료되고, 샹크스는 인어 루피의 존재와 바닷속 왕국 이야기에 흥미를 가짐.

루피는 샹크스를 좋은 친구(인간 친구이자 비밀 친구)로 여겼지만, 샹크스의 루피에 대한 감정은 흥미를 넘어 더 가까이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음. 인어의 몸도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체온에 화상을 입고 말아서, 만질 수조차 없는 안타까움이 만지고 싶고 손에 넣고 싶다는 욕망으로 변함.

샹크스가 잘 구워진 고기와 온갖 진귀한 음식으로 루피를 꾀어도 루피가 넘어오지 않자, 어느 날 그는 루피에게 함께 수영하자고 제안함. 저기 보이는 바위까지 누가 빨리 도착하는지 내기하자며 힘차게 출발했는데, 제 뒤를 바짝 쫓아오던 샹크스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아서 루피는 당황함.

샹크스? 하고 부르며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물이 튀는가 싶더니 익숙한 빨간 머리가 물 속으로 사라지는 게 보였음. 샹크스가 바다에 빠진 거였음. 루피는 서둘러 샹크스 쪽으로 헤엄쳐 가,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샹크스를 건져냈음.

뭍으로 데려가 이름을 불러도 샹크스는 깨어나지 않았고, 인어인 루피가 물에 빠진 인간에 대한 응급 처치를 알 리도 없었음. 주위에 인적도 없는데 이대로 두면 샹크스가 죽을 것 같아서, 평소 거의 쓰지 않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루피는 지금 샹크스에게는 숨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함.

결론을 내자마자 루피는 샹크스에게 입맞추고는 숨을 불어넣으려 했는데, 그때 샹크스가 눈을 떴음. 금세 키스의 주도권을 빼앗은 그는, 입 안에 숨겨두었던 석류 한 알을 루피가 삼키게 만들었음.

열매가 목으로 넘어가는 감각에 당황한 루피는 뒤로 물러서다가, 얕은 파도가 치는 해안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음. 그런데 바닷물이 닿았음에도 다리가 꼬리로 변하지 않았음.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에 루피는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몸에 힘이 빠지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음.

혼란 속에서 그대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루피를, 샹크스가 뒤에서 안고 건져올렸음. 흔들리는 소년의 눈동자와, 다정하지만 어두운 남자의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보았음.

너는 이제 돌아갈 수 없어.

07.

샹크스가 왼팔을 잃던 날 전에도 어린 루피가 바다에 빠져서 샹크스에게 구해진 적이 있으면 좋겠다. 고무고무 열매 때문이든, 너무 깊은 곳까지 가서 놀다 그랬든, 바다에 가라앉으며 숨 넘어가는 루피에게 샹크스가 입으로 숨을 불어넣어 줬겠지.

루피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그 감각만은 선명하게 느꼈는데, 주체가 샹크스인 건 알지만 무얼 했는지를 몰라서. 뜬금없이 샹크스의 손가락을 덥석 물었다가, 제가 안긴 품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다가, 가까이서 닿는 숨결에 이거라고 본능적으로 눈치채서 입맞추기.

샹크스는 갑작스런 루피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아이의 작고 말랑한 입술을 밀어내지 않고 천천히 탐닉할 것 같다.

06.

고무고무 열매를 먹어서 헤엄치지 못하는 루피에게 바다는 누군가의 말대로 지옥일 수도 있는데, 샹크스와 그가 맡긴 밀짚모자를 따라 그 지옥에 기꺼이 들어섰다는 게 좋다. 샹크스가 고무고무 열매의 정체를 알고 루피로 하여금 그걸 먹도록 의도했다는 설이 맞다면 더더욱. 한쪽은 상대를 즐거운 지옥에 처넣고, 다른 한쪽은 그 지옥의 끝까지 따라가는 사랑이란.

05.

고무고무 열매를 먹어서 헤엄을 못 치게 된 뒤, 전에는 늘 뛰어들어 놀았던 바다를 침울하게 바라보는 어린 루피를 달래주는 샹크스로 샹루. 루피가 태워달라 조르던 레드 포스호에 루피를 데려가 구경시켜 주기도 하고, 작은 배를 한 척 내어 둘이서 뱃놀이도 하겠지.

그럼에도 루피의 표정이 밝아지지 않자 샹크스가 이유를 묻는데, 루피는 바다에 들어가 놀고 싶지만 이제 맥주병이라서 안 된다며 울먹일 것 같다. 그러자 샹크스가 한 팔로 루피를 안아든 채 꽉 잡으라고 말한 뒤, 배에서 바다로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루피와 마주보고는 아이의 한 손은 제가 잡고, 다른 한 손은 제 목에 두르게 한 뒤 천천히 물살을 가르기.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둘만의 무도처럼.

04.

샹크스가 어린 루피를 뽀뽀로 깨우는 게 보고 싶다. 루피! 하고 불러도 세상 모르고 자는 아이의 얼굴이, 평소의 개구쟁이답지 않게 순한 게 귀여워서. 너 마키노 씨한테 나 보고 싶다고 매일 노래를 불렀다면서, 내가 와 줬는데 잠이나 자? 하며 말랑한 볼을 손가락으로 찔렀다가, 장난기가 발동해 감긴 눈꺼풀부터 작은 콧대, 발그레한 두 뺨까지 루피의 온 얼굴에 쪽쪽 입맞추기.

겨우 눈을 뜬 루피는 으엑, 샹크스?! 수염 따가워! 하며 질색하겠지. 해야 할 말은 그게 아니잖아? 라며 샹크스는 버둥대는 루피를 향한 뽀뽀를 멈추지 않다가, 루피가 마지못해 어서 와, 하자 다녀왔어, 하며 루피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겹쳤으면 좋겠다. 저를 따르는 아이에 대한 애정 반, 장난 반으로 그렇게 입맞추다가, 어느 날 나 좀 더 자고 싶으니까 깨우지 마, 하며 루피 쪽에서 입술에 뽀뽀해 온 뒤로 애정과 장난 이상의 감정을 자각하기.

03.

현대 AU로 낡아빠진 티에 청바지, 목장갑 차림으로 짐을 나르는 떠돌이 청소년 루피와 여행객 샹크스가 항구에서 만나는 게 보고 싶다. 후덥지근하면서 짭짤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루피는 샹크스의 원조교제 제의를 거절하겠지. 샹크스도, 그와의 잠자리도 좋아하지만 돈 받고는 안 하려 들기. 루피의 처지를 생각하면 샹크스의 돈을 보고 제 쪽에서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샹크스는 루피가 돈을 비롯한 무엇으로도 구속되지 않는 점을 사랑하면서 모순되게도 제 곁에 구속해 두고 싶어했으면 좋겠다. 원하는 걸 못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02.

샹크스가 팔 하나를 희생해서 저를 구해준 순간이 어린 루피의 인생을 바꾼 가장 강렬한 체험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좋다. 수영을 못하게 됐는데 바다에 빠졌을 때의 혼란, 괴물에게 잡아먹힐 거라는 공포, 그 순간 자신을 구한 샹크스를 향한 애착, 그의 희생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섞여서.

샹크스가 발했던 패기도 그 순간이 루피에게 각인되는 데 무의식적으로 한몫했을 것 같고. 루피는 울면서 샹크스를 꼭 붙든 채 그의 외팔에 안겨, 크나큰 다정함 속에 마을로 돌아갔겠지. 샹크스와의 체험이 여러모로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어지간한 일에는 무감각해져서 감정이 풍부했던 전과 달리 유쾌한 것 같으면서도 무표정으로 묘하게 싸한 분위기를 종종 풍기며 성장해 가는 루피. 사랑하면 닮는다고, 그 모습이 샹크스와 판박이겠지.

연어들이 거친 물살을 거슬러 고향으로 돌아가듯, 새들이 철따라 가야 할 곳으로 향하듯, 루피가 해적왕이 되어 재회할 샹크스를 본능적으로 제가 꼭 돌아가야 할 곳이라 여겼으면 좋겠다. 지금은 제 곁에 없는 샹크스 대신, 그가 맡긴 밀짚모자를 그처럼 생각해 집착하며 애지중지하고.

01.

현대 AU로 음악 수업을 위해 의붓딸 우타와 헤어지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슈가 대디 만남 앱에서 자기를 아빠로 대해줄 여자아이를 찾는 샹크스와, 착오로 남자아이인데 샹크스와 만남을 갖게 된 루피가 보고 싶다.

샹크스는 남자아이가 나온 걸 보고 바로 만남을 취소하려 했지만, 배가 고팠던 루피가 밥 사 달라고 매달려서 함께 식사하게 되겠지. 잘 먹는데다 딱 봐도 말괄량이인 루피가 우타와 겹쳐 보여서 만남을 이어가다가, 야릇한 관계로까지 발전했으면 좋겠다.

샹크스는 나랑 안 해?
뭐??
이 앱, 샹크스 같은 아저씨가 나 같은 애랑 만나서 하라고 있는 거잖아. 아니야?
로 시작하는 H.


Wenn sie nicht gestorben sind, leben sie noch.
그들이 죽지 않았다면,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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