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C

[아무코] 백귀야행

by RAYO. 2017. 6. 30.

요괴 아무로x신의 아이 코난. 동양 판타지 AU

*아무코인데 현재 업로드분에서 아무로의 등장이 없습니다.
*<세계관> 건너뛰고 내려가 <본문>부터 읽으셔도 큰 지장은 없습니다.

<세계관>

세계는 양(陽)과 음(陰)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의 바탕에 음이 더해진 존재가 인간이다. 물질적인 것의 성질이 양이고, 그렇지 않은 것의 성질은 음이다. 세계에는 양음의 원리를 따르는 인간과 달리 음양을 토대로 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존재의 유지를 위해 양의 본질을 지닌 것은 양을, 음의 본질을 지닌 것은 음을 필요로 했다. 때문에 인간이 의식주를 갈구하듯 음양의 존재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과는 별개인 힘, 즉 영력을 갈구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양(물질)과 음(영력)으로 이루어졌기에, 굳이 인간과 접촉하지 않고 자연에서 영력을 취하는 부류도 있었으나, 인간을 습격해 영력을 빼앗는 자들도 많았다. 본성이 양음이든 음양이든 존재는 고유한 양과 음의 균형을 통해 성립했기에, 그 균형이 어그러지면 존재는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후자의 부류에게 해를 입은 인간들은 음양의 존재를 통틀어 요괴라는 불길한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인간은 양을 바탕으로 하기에, 영력을 가지고 있고 그 영향도 받지만 그것을 직접 사용할 수는 없다. 인간 중에 드물게, 보다 음양에 가까운 본성을 지녀 영력을 다루는 이들을 가리켜 음양사라고 했다. 그들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요괴를 퇴치하거나, 요괴와 계약해 그것을 부리며 신비한 일들을 행했다. 음양사와 계약한 요괴는 식신이라고 했는데, 계약 시 음양사는 요괴에게 힘을 빌리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가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요괴마다 천차만별이었으나, 무엇이 됐든 음양사가 조건을 수락해 대가를 지불하면 계약은 성립했다.

신은 인간과 요괴가 살아가는 현세보다 높은 곳, 신계에 거했다. 현세의 모든 것은 양과 음으로 이루어지면서 유한한 것이 특징이었다. 양이 많으면 음이 적고, 음이 많으면 양이 적었다. 또한 본성이 양음이든 음양이든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신계는 무한한 양과 무한한 음이 균형을 이루는 곳이기에, 신은 현세의 모든 제약을 초월해 고뇌도 죽음도 없다고 했다. 태초, 현세가 생겨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신이 현세에 강림했다. 보다 높은 존재인 신을 인간 중 한 명, 요괴 중 하나만이 알아보았고, 그들과 함께 신은 현세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신에게 현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신 또한 신계가 어떤 곳인지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인간과 요괴가 신을 부러워하자, 신은 현세를 안내해 준 그들에 대한 답례로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인간은 현세에서 신과 같은 무한을 누리고 싶다고 했고, 요괴는 현세를 떠나 신계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바람을 들은 신은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요괴가 다른 존재로부터 영력을 빼앗지 않으면서 내면의 수행을 통해 고뇌에서 벗어나면, 현세를 벗어나 신계에서 신이 될 수 있다. 양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은 육체의 보전과 물질적 풍요라면 스스로도 충분히 구가할 수 있으나 본질상 음인 영력은 부족하기에, 현세에 머무르면서 신으로부터 영력을 빌려 쓸 수 있게 한다. 요괴와 마찬가지로, 조건은 다른 존재를 해하지 않으며 내면의 수행을 통해 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조건을 만족한 인간은 현세에 다시 태어나 신의 무한한 영력을 빌려 쓰는 것이 가능한 존재, 사카키(榊)가 된다. 이 명칭은 신이 현세에 강림하는 통로로 사용되었던 나무의 이름(비쭈기나무)에서 유래하였다.

약속의 증표로 49년에 한 번, 신의 아이가 현세에 태어났다.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아이는 무한한 양과 무한한 음으로 이루어진 신 그 자체로,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육체와 무한한 영력을 지닌다. 일곱 살이 되면 아이는 선택해야 했다. 신계로 돌아갈지, 인간 혹은 요괴로 현세에 남을지. 인간과 요괴 중 어느 쪽을 택해도 육체와 영력은 평범한 수준으로 격하되지만, 인간을 택할 경우 신의 영력을 빌려 쓸 수 있는 사카키와 같은 체질을, 요괴를 택할 경우 다른 이까지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는 점에 차이가 있었다. 인간, 요괴 할 것 없이 극기를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르려는 이들은 줄고, 사리사욕을 위해 신의 무한한 영력을 탐하는 이들이 늘어, 신의 아이를 차지해 이용하려 들었다.


<본문>

마루 타케 에비스 니 오시 오이케(丸 竹 夷 二 押 御池). 노래하는 박자에 맞춰 색실로 수놓인 공이 아이의 손과 바닥 사이를 오갔다. 음이 맞지 않는 노래에 아이의 어머니, 유키코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녀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는 귀여운 노래를 멈추고 토라지고 말 것이었다. 노래 속, 거리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바닥에서 올라오던 공이 어느 순간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아이의 손에서 벗어난 공은 마루 밑 제법 깊은 곳까지 굴러갔다. 몸을 굽힌 채 공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던 아이의 얼굴이 난감하다는 빛을 띠었다. 공을 줍기 위해 마루 밑으로 들어가면 옷이 더러워질 것이고, 옷이 더러워지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혼나는 것은 물론 바쁜 고용인들의 일거리를 하나 더 늘리는 셈이었다. 자신에게 언제나 친절한 그들에게 비단옷의 세탁과 같은 번거로운 일을 구태여 안기기는 미안했기에, 아이는 마루 밑으로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렇지만 공을 그대로 버려두고 싶지도 않았다. 공이 굴러간 마루 안쪽을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했다. 이리 와. 공놀이를 멈춘 채 마루 앞에 우뚝 선 아이에게 유키코가 다가갔을 때, 그녀는 땅에서 떠오른 공이 천천히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공이 손에 닿자 아이의 얼굴에 안도감이 번졌다. 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던 아이는 유키코의 시선을 뒤늦게 깨닫고는 엄마? 하고 불렀다. 그 목소리에, 놀라움과 슬픔이 섞인 얼굴로 굳어 있던 유키코가 몸을 굽혀 아이를 끌어안았다. 어째서… 어째서, 신쨩…. 엄마? 그녀의 질문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녀가 슬퍼하는지 아이는 알지 못했다. 작은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슬픔에 잠겨 자신을 꼭 끌어안은 어머니를 마주 안아주는 것 정도였다.

헤이안 시대, 귀족 쿠도 가에서 신의 아이가 태어났다. 평민 집안에서 신의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 보호라는 명분으로 음양사와 결탁한 귀족이 아이를 빼앗아 가고는 했기에, 귀족으로 태어난 것은 아이에게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쿠도 가의 아들로서 아이는 신이치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 이름은 쿠도 부부와 신이치 셋만 있을 때가 아니면 불리는 일이 없었다. 음양도에서 본명과 생일을 밝히는 것은 약점을 밝히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대외적으로 아이는 코난이라고 불리었다. 떳떳치 못한 이익을 주고받는 결탁 관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귀족에게는 가까이 지내는 음양사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쿠도 부부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택에 믿을 수 있는 음양사들을 머무르게 했다. 삼엄한 경비가 언제나 신이치를 둘러싸고 있었고 집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는 생활이었지만, 바쁜 와중에도 쿠도 부부는 최대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음양사를 비롯한 고용인들도 모두 친절했기에 아이는 물심양면으로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이는 음양가문인 아카이 가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 공부를 시작하는 나이가 다섯 살이었다. 아이는 어렸고 두 해가 더 지나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었으나, 일곱 살이 되면 아이는 선택해야만 했다. 신계로 돌아갈지, 인간 또는 요괴로 현세에 남을지. 부모로서 쿠도 부부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아이의 미래를 지켜보고 싶었지만, 신의 아이를 이용하려는 이들로 넘쳐나는 현세에 아이가 남는 것은 가혹한 일일 터였다. 그들은 아이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하되, 아이가 현세에 남을 경우에도 대비하기로 했다. 음양도를 익힌다면 신의 아이를 노리는 음양사나 요괴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었다. 아카이 가의 현 당주 아카이 슈이치는 실력으로 음양사와 요괴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고, 쿠도 부부와 친분도 있었기에 보호와 공부라는 두 가지 목적을 겸해 신이치는 그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신이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쿠도 저택의 문을 나서기 전, 아버지 유사쿠가 그에게 안경을 내밀었다. 원래 유사쿠가 사용하던 평범한 안경에 지인인 아가사 히로시(음양사로, 요괴와 직접 대치하지는 않으나 부적을 비롯한 물건에 주술을 불어넣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의 주술을 더한 것으로, 집을 떠나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자, 물건의 형태로나마 부모의 사랑이 언제나 그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주술에 의한 기능은 기척을 지우는 것으로, 신의 아이가 지닌 무한한 영력의 기척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어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조그만 얼굴에는 큰 감이 있는 안경을 쓰고서, 아버지, 어머니와 포옹과 입맞춤을 나눈 신이치는 다녀오겠습니다, 의젓하게 고하고는 음양사들에게 둘러싸여 쿠도 가를 나섰다.

음양도를 익히기 위해 아카이 가에 왔다고 해도 신이치는 다른 음양사 견습생들과 어울려 공부할 수 없었다. 쿠도라는 성까지 숨긴 채 에도가와 코난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름과 출신을 위장하더라도 신의 아이가 지닌 무한한 영력만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안경의 효과로 기척은 완화하고 있어도 다른 음양사들이 보는 곳에서 영력을 사용한다면 반드시 눈에 띄고, 바깥까지 소문이 퍼질 것이었다. 때문에 그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아카이 가의 부지 깊은 곳, 결계로 둘러싸인 별채에 기거하며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아카이 슈이치를 비롯한 극소수로 한정되었다.

아카이 슈이치와 몇 명의 음양사 외에 코난이 만날 수 있으며,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하이바라 아이였다. 별채 옆방의 주인으로, 코난의 또래로 추정되는 그녀는 코난과 같이 비밀리에 아카이 가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녀의 본명은 미야노 시호로, 음양가문 미야노 가의 둘째딸이었다. 미야노 가는 아가사와 마찬가지로(시호의 아버지 미야노 아츠시와 아가사는 면식이 있는 사이이기도 했다), 요괴와 직접 대치하지 않고 주술을 연구하는 쪽이었다. 그들의 연구 목표는 타고난 영력의 양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고, 더 나아가 사카키나 신의 아이와 같이 영력을 무한히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요괴는 다른 존재로부터 영력을 취하며 살아가지만, 그러한 행위를 통해 타고난 영력의 양을 늘릴 수는 없었다. 영력의 양은 음양사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기에, 그것을 어느 정도 늘릴 수 있는 주술이 몇 개인가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효과는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설령 어떤 방법으로 영력을 크게 늘릴 수 있다고 해도, 타고난 양과 음의 균형이 무너질 경우 존재는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문제에 부딪쳤다. 그렇게 영력 증가는 모두가 바라지만 실현 불가능한 소원으로 남는 듯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음양사 미야노 부부가 그것을 연구해 성공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영력 증가에 관심을 보였던 자들은 불가능한 일이고 헛소문일 뿐이라며 일축하는 이들과, 미야노 부부를 찾아 소문이 정말로 맞는지 확인해 보자는 이들로 나뉘었다.

후자의 부류 가운데 요괴 집단 백귀야행이 있었는데, 요괴와 음양사들 사이에 악명이 높았다. 이들의 관심사는 미야노 부부와 같은, 영력의 증가와 그것의 무한한 사용이었다. 미야노 부부는 연구의 진행을 위해 다른 존재를 해하기를 꺼려했으나, 백귀야행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음양사, 요괴, 평범한 인간, 그 밖의 자연물까지 해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들은 영력의 증가에 관한 연구, 사카키, 그리고 신의 아이를 찾아 다녔고, 자연히 미야노 부부와 그들의 연구는 백귀야행의 목표물이 되었다. 목표물이 정해지면 이들은 무리를 지어 밤길을 나섰고, 도중에 마주치는 모든 존재를 죽였는데, 이 때문에 백귀야행(百鬼夜行)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미야노 가의 첫째딸 미야노 아케미는 아카이 슈이치와 약혼한 사이였기에, 백귀야행에 맞서 미야노 일가를 보호하는 일에 아카이가 나섰다. 그를 필두로 뛰어난 음양사들이 백귀야행의 강대한 요괴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둘째딸 시호를 제외한 일가가 몰살, 많은 음양사들과 요괴들, 그리고 아카이의 한 식신 또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비규환의 전장에서 아카이는 시호를 데려와, 가문의 부지 내 별채에 보호하고 그녀의 존재를 비밀에 부쳤다.

시호는 부모님의 연구 자료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아카이는 구태여 시호를 상대로 연구 자료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미야노 가의 연구 결과를 어떻게 할지는 가문의 마지막 남은 일원인 시호가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코난이 아카이에게 음양도를 배울 때 하이바라는 아카이 가가 소장한 자료들을 뒤적이며 주술을 공부했고, 별채에 드나드는 음양사들에게 때때로 질문하며 부모님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 정진했다. 언젠가 하이바라가 부모님의 연구를 모두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정말로 영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할지는 하이바라 자신도, 아카이도 알지 못했다. 다만 아카이는 하이바라가 연구 결과를 세간에 공표하든, 묻어 두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며, 백귀야행을 비롯해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이용하려 드는 무리로부터 최선을 다해 그녀를 보호할 것이었다.

코난의 음양사 입문은 순조로웠다. 음양사는 양음의 본성을 가진 인간 가운데 상대적으로 음양에 가까운 본성을 지녔기에 음의 힘인 영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본질은 보통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양이기에 영력의 흐름을 처음으로 깨닫고 사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신의 아이, 무한한 양과 무한한 음의 조화로 이루어진 존재에게 있어 영력의 흐름을 느끼고 사용하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일에 불과했다. 코난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마루 밑 깊은 곳까지 굴러간 공을 손대지 않고 영력만으로 끌어와 꺼낸 적도 있었다. 당시 코난은 음양도를 전혀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손발을 움직이듯 당연하게 영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코난은 영력의 사용에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못했지만, 아카이는 보통의 음양사 견습생들에게 그러하듯 음양도의 기초, 즉 영력의 흐름을 깨닫고 사용하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쳤다. 코난에게 음양도가 정말로 필요해지는 것은 신의 아이로 있는 지금이 아니라, 신계로 돌아가지 않고 인간이나 요괴로 현세에 남는 미래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코난은 신계로 돌아갈 수도 있었고, 아직 그의 미래가 현세에 남는 것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코난이 반드시 신계로 돌아간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었기에, 쿠도 부부와 같이 아카이 또한 코난이 어떤 미래를 맞이하더라도 대비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신의 무한한 영력을 빌려 쓸 수 있는 사카키라 한들 인간이라 결국 본질은 양이었기에, 코난은 인간으로 현세에 남아 사카키가 될 때를 대비해 음양도의 기초를 배워둘 필요가 있었다.

아카이의 지도 아래, 코난은 착실하게 음양도의 기초와 기본기를 배워 나갔다. 귀족인 쿠도 부부가 아카이 가를 방문해 깊숙이 자리한 별채까지 들어가면 눈에 띄기 십상이었고, 아카이와 코난이 쿠도 가로 찾아가는 것도 다르지 않았기에, 코난은 부모님과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때때로 부모님에게 편지를 받고, 답장을 써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음양도를 배우면서 신의 아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어느 정도 자각한 코난은 그것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도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카이 가에서 주술을 연구하는 음양사(하이바라)가 아가사와 학술적인 서신 교환을 행한다는 명분으로, 쿠도 가와 이웃한 아가사 가와 아카이 가를 오가는 심부름꾼을 통해 코난과 쿠도 부부도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코난은 내심, 자기 혼자만 부모님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면 티내지는 않아도 하이바라가 쓸쓸함을 느꼈을 텐데, 그녀에게도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가족 같은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가사와의 서신 교환이 명분대로 하이바라의 주술 공부에 기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아카이 가에서 코난은 여섯 살이 되었다. 하이바라에 비하면 여전히 작기는 했지만 키가 제법 자랐다. 훌쩍 짧아진 소매와 바지를 본 아카이가 호오, 하고 즐거운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섯 살의 어느 날, 주말도 아닌데 아카이가 음양도 수업의 휴강을 선포했다. 간혹 있는 출장인가 했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무슨 일로 어디에 가는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하이바라도 함께 간다고 했다. 자신과 같이 엄중한 보호를 받고 있는 하이바라가 외출한다는 말에 코난의 눈이 놀라움으로 휘둥그레졌다. 이제까지 아카이가 출장을 가거나 자리를 비워도 별채에 하이바라가 언제나 함께였다. 그런데 아카이와 하이바라가 함께 외출해 버리면, 아카이 가에서 살게 된 이래 처음으로 코난은 혼자가 되는 셈이었다.

외출 준비에 여념이 없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코난은 망설임이 묻어나는 손길로 아카이의 소맷자락을 잡아끌고는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저… 아카이 상. 나도…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신의 아이로 무한한 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점을 제외하면 코난은 여섯 살 난 작은 아이에 불과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본인이 원한 적도 없을 신의 아이라는 위치에 대한 책임감을 강요받으며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처지. 여섯 살짜리에게는 버거울 것임에 틀림없는 것들을 짊어지고도 아이는 울지도 떼쓰지도 않았고, 불평 한 마디조차 한 적이 없었다. 비슷한 처지, 비슷하게 어른스러운 하이바라와 함께 한다는 것이 위안이 되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아이는 가혹한 현실을 있는 힘껏 버티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어리광을 하루쯤 받아준들 문제 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아카이는 결론지었다. 하이바라의 존재 또한 비밀임을 고려해 다른 이들의 눈을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잡은 일정이고, 믿을 수 있는 음양사 몇이 호위로 나설 것이었다. 생각 끝에 아카이는 코난의 동행을 허락했고, 아카이 가에서 살게 된 이래 처음으로 코난은 대문을 나서게 되었다.

외출의 이유는 묘소 참배였다. 몇 년 전 요괴들을 상대로 큰 전투가 있어 하이바라의 가족, 아카이의 동료였던 음양사들, 그리고 한 식신까지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실제 기일은 다른 날로 아카이는 이미 추모식에 참석했지만, 숨어 지내는 하이바라를 위해 세간의 눈을 피해 다시 한 번 방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무거운 이야기에 코난은 자신이 눈치도 없이 괜히 따라나선 것은 아닌지 후회스러웠다. 아카이가 그런 코난의 기색을 눈치 챈 듯 부드러운 어조로, 불편해하지 말고 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어 줄 것을 부탁해 코난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했다.

생애를 통틀어 집 밖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던 코난은 묘소 참배도 처음이었다.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아, 눈은 꼭 감은 채 코난은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각각 다른 이름이 새겨진, 모양은 같은 묘 앞에서 그러기를 몇 차례, 열의 맨 끝, 혼자만 모습이 다른 단출한 묘에 이르렀다. 식신의 묘라고 했다. 본래 요괴인 식신은 인간과 같이 장사지내지 않지만, 당주인 아카이가 부득불 주장을 굽히지 않아 묘를 만든 것이라고 동행한 음양사가 귀띔해 주었다. 요괴는 죽어도 인간처럼 유해를 남기지 않기에, 안치된 것은 없어 빈 무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 된 코난은 묘에 쓰인 식신의 이름을 읽어보았다. 빈 무덤의 주인은 스카치라는 이름이었다.

<메모>

미야노 가족의 보호를 위해 스카치가 아카이에게 협력했었다. 협력의 대가로 스카치가 내건 조건은 아카이가 후루야를 보살펴줄 것. 후루야는 이를 모른다. 미야노 가족 사건 때 스카치도 죽고 후루야는 아카이를 원망한다. 미야노 가족 사건의 범인이 아카이라는 루머가 있다. 아무로는 그 루머를 진실인 양 코난에게 전하며 아카이를 믿지 마, 그가 미야노 가족을 죽였어. 라며 자신에게 올 것을 종용한다.

'D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난른  (1) 2021.07.07
[스카버본] 기계장치의 거리: 후기  (0) 2017.07.02
[스카버본] 기계장치의 거리: 로그  (0) 2017.07.02
[후루코] 인생은 아름다워  (0) 2017.06.30
후루야 레이의 성격에 관한 고찰  (0) 2017.06.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