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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소설

[미르에반] 미르가 인간이 되었습니다

by RAYO. 2015. 2. 10.

에반과 미르는 마을 밖에서는 함께 다닐 수 있었지만, 마을 안에서는 종종 떨어져 있어야 했음. 사람들이 미르를 도마뱀, 즉 애완동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실내에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것. 에반과 미르는 여러 마을을 돌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다녔기에, 사람들은 에반을 좋아했고 친절하게 대해주었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쑥스러운 듯, 그렇지만 즐거운 듯 웃고 있는 에반을 미르는 뜰 한구석, 사육장의 동물들 사이에서 뚱하게 지켜봄. '나는 이런 데다 처박아놓고 혼자서만 즐겁다니 너무하잖아 마스터-' 속으로 불평하며 볼을 부풀린 채 에반과 그의 곁을 메운 사람들을 노려보던 미르는 문득 '나도 마스터와 같은 인간이라면 떨어지는 일 없이 마스터 옆에 있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함. 오닉스 드래곤은 마법을 쓸 수 있는데 아직 어린 미르는 마력을 잘 통제하지 못했고, 마력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미르의 생각은 현실이 됨. 갑자기 빛이 번쩍하고 미르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함.

얼떨떨한 채 미르는 손을 움직여 비늘이 없는 피부를 쓸어 보는데, 팔다리가 길어진 것과 손가락과 발가락이 5개씩이 된 것을 깨닫고 놀람.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간이 되었으니 이제 마을 안에서도 마스터와 떨어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미르는 신이 남. 그때 뜰에서 정체 모를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뜰에 있는 미르를 걱정한 에반이 미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데, 미르는 한껏 들떠 "마스터~!!"라고 외치며 에반에게 뛰어들어 안김. 그 돌격에 당황한 에반은 중심을 잃고 넘어짐. 에반에 이어 뜰의 상황을 보러 온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그 자리에 굳음. 웬 알몸의 소년이 에반 위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 사람들의 시선에 에반은 어찌할 바를 몰라 미르를 밀어내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도망감. 미르는 벌거벗은 채인 몸을 가릴 생각도 않고 활기차게 에반의 뒤를 쫓아감. 방에 도착한 에반은 "같이 가, 마스터!" 하며 쫓아온 미르에게 "미르...지? 어떻게 된 거야, 그 모습은?" 하고 물음. 미르는 밝게 웃으며 "나도 모르겠어."라고 간단하게 대답함. 그 말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한 기분이 된 에반에게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미르는 "그보다 마스터, 나 어때? 진짜 인간 같지? 이제 밖으로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거지?" 하고 들떠서 떠들어 댐. 에반은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으니 조만간 리프레에라도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저렇게 좋아하니 마을에 머무르는 동안 당분간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림.

그러나 미르가 인간이 되고 나서 에반은 이래저래 골머리를 앓음. 언제 어디서나 찰싹 붙어 있으려고 하는데다(에반은 몰랐지만, 미르가 이러는 이유는 이제까지 에반이 실내로 들어가면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였음), 인간 사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에반과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그게 뭐야?"라고 묻기 일쑤였음. "에반 군이랑 미르 군은 여행하다 만난 건가요?"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아니, 난 태어날 때부터 마스터를 알고 있었는걸. 마스터는 내 '영혼의 계약자'니까!"라고 대답하는 걸 에반이 황급히 말을 끊고 고향 친구라며 얼버무린 적도 있었음.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그런지 미르는 드래곤일 때 먹던 날고기 같은 음식은 먹지 못하게 되어, 인간의 음식을 먹게 됨. 그런데 테이블 매너부터 포크와 나이프를 쥐는 법까지 아무 것도 몰랐기에 에반은 식사 때마다 진땀을 뺌. 게다가 드래곤일 때와 비교하면 약해진 것이지만 인간 치고는 (인간화한) 미르의 힘은 센 편에 속했는데, 그 힘을 조절하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신기하다고 만져 대는 통에 미르가 가는 곳마다 기물파손이 일어났음. 그럴 때마다 에반은 미르를 말리고, 타이르고, 주의를 주었지만 미르의 말썽은 끊이지 않았음.

그러던 어느 날, 미르가 친 몇 번째인지도 모를 사고를 수습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하느라 진이 다 빠진 채 에반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였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르가 에반을 보고서는 해맑은 웃음을 만면에 띤 채 "마스터!" 하고 달려와 안김. 미르는 종종 옷을 걸치고 있는 것이 불편하다며 거리낌없이 벗어던지고는 했음. 평소 같았으면 갑자기 튀어나온 나신에 잠시 당황했다가, 곧 한숨을 내쉰 다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니 어서 옷 입으라고 주의를 주었겠지만, 그렇게 하기에 지금의 에반은 지친 데다 짜증이 쌓인 상태였음. 에반은 미르를 밀어내며, 거의 낸 적 없던 화를 냄. "미르, 제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인간처럼 행동해 줘. 곤란하단 말이야...!!" 그러자 미르는 미르대로, 에반에게 쌓였던 서운한 감정이 폭발함. "내가 인간이 되고 나서 마스터는 나한테 웃어준 적이 없어. 다른 인간들하고 있을 땐 잘 웃었으면서! 나한테는 이거 하면 안 된다, 저거 하면 안 된다는 말뿐이고! 마스터는 이제 내가 싫어진 거야?" 반성은커녕 똑같이 큰 소리로 맞서는 미르가 어이없어, 에반은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하고 반박하려다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어지러움을 느껴 그 자리에 쓰러짐. 미르가 사용하는 다른 마법들과 같이, 미르의 인간화에는 미르의 마력뿐만 아니라 영혼이 이어진 계약자인 에반의 마력도 사용되고 있었음. 미르는 드래곤이라 어려도 인간에 비하면 마력량이 월등해 별 무리가 없었지만, 인간 소년인 에반의 마력량은 미르가 계속 인간화해 있음으로써 연속된 마력의 소비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거기에 미르의 행동에 신경쓰고 뒷감당을 하느라 피로가 쌓인 것도 한몫했음.

소리를 치다가 에반이 쓰러지자 미르는 에반과 함께 사냥했던 몬스터들이 비명을 내지르고는 죽었던 것을 떠올림. 에반이 이대로 죽는 줄 알고 패닉에 빠진 미르는 펑펑 울며 말을 쏟아냄. "마스터!! 죽으면 안 돼! 계속 마스터 옆에 있고 싶었는데, 그래서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죽어버리면 어떡해?! 내가 다 잘못했어. 이제 마스터를 곤란하게 하는 짓은 안 할게. 마스터가 나한테 웃어주지 않아도, 나를 싫어해도 불평 안 할게. 그러니까... 죽지 마...!!!" 머리가 어지럽고 의식은 점점 멀어져가는 가운데에도, 필사적인 미르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에반의 안에 와 닿았음. 좀처럼 볼 수 없는 진지한 태도로 사실은 어처구니 없는 착각을 하고 있는 미르가 에반은 우스우면서도 귀엽다고 생각해 피식 웃음. '이 정도면 말썽부린 것에 대한 반성은 충분히 되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는 에반 또한 미르에게 화났던 것이 눈 녹듯 사라진 상태였음. 살짝 웃으며 에반은 한 손을 들어 미르의 얼굴을 어루만짐. 그리고 미르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힘겹게 말함. "미르, 내가 너를... 싫어할 리가... 없잖아." 그 말에 기껏 닦아낸 눈물이 다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자, 에반은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음. "너를 두고... 죽는 일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가서 누구 좀 불러줄래... 여전히 상식이 부족해 쓰러지는 것이 곧 죽는 것이라 알고 있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 오닉스 드래곤에게 하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에반은 정신을 잃음. 아, 갈 때 옷은 좀 입고, 라는 말은 결국 하지 못한 채.

병실의 침대에서 에반은 눈을 뜸. 그가 미처 상황을 정리해 보기도 전에 묵직한 것이 가슴팍으로 달려듦. "이 녀석이 환자한테! 떨어져!" 의사의 손에 붙들려 마지못해 떨어져 나간 묵직한 것의 정체는 어느새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간 미르였음. "이 녀석, 한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갑자기 나타나서는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지 뭡니까. 불 같은 것까지 뿜어대질 않나... 아무리 해도 진정시킬 수가 없어 주인인 에반 군을 찾아 방으로 가 보니 쓰러져 있더군요." 미르의 필사적인, 그러나 주위에는 피해를 주는 노력이 상상이 가 에반은 푸훗, 하고 웃음. 그리고 의아하게 바라보는 의사에게 "미르 나름대로 제가 쓰러졌다고 알리고 싶었던 걸 거에요. 아, 마을 분들께는 죄송해요."라고만 말함. 여전히 에반의 웃음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의 의사는 다시 말을 시작함. "마력 소모로 인한 빈혈입니다. 최근에 마을에서 나가지는 않으셨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마력 소모가 많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뭐, 조금 안정을 취하면 금방 나아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는 미르를 가리킴. "이 녀석을 좀 데리고 나가도 되겠습니까? 병실 내에 동물은 금지인데 이 녀석이 에반 군에게서 떨어지려 하지를 않아서 말입니다. 병실에서 난동이라도 일으키면 곤란하니 그대로 두었습니다만, 이제 정신도 드셨고 하니." 에반은 마음 속으로 미르에게 말함. '들었지? 나는 이제 괜찮으니까, 시키는 대로 밖에 있어 줘.' '그치만 마스터...!' 반박하려던 미르는 이제껏 말썽부린 것과 에반이 쓰러졌던 것을 상기하고는 그러지 못함.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에반의 곁에 있고 싶어 머리를 굴리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함. '동물이 안 되는 거면, 인간 모습은 괜찮은 거지?' 에반은 눈을 조금 크게 뜬 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의식을 잃기 전, 자신의 곁에 있고 싶다고 필사적으로 외치던 미르의 모습이 떠올라 수락함. 이번에는 옷은 입고 오라는 말을 제대로 전할 수 있었음.

조금 뒤, 얌전해진 미르를 병원 밖에 데려다 놓고 돌아온 의사의 곁을 낯익은 소년이 달려서 지나감. 병원으로 들어가는 소년의 뒤에 대고 "병원 안에서는 뛰면 안 됩니다!" 라고 일침을 놓은 그는 문득, 에반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소년이 에반이 쓰러지고 나서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림. 그러나 바쁜 의사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었기에, 그는 곧 그것을 잊어버림.

병실 창문 너머의 하늘이 어느덧 어둑해짐. 피로가 남아있던 탓에 깜빡 잠이 들었던 에반은 다시 눈을 뜸. 무언가 따뜻한 것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음. 침대 옆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나 싶었던 미르가 어느새 침대로 올라와 자신을 끌어안고 잠이 들어 있었음. 자신과 같은 인간 소년의 모습을 한 드래곤의 잠자는 얼굴을 바라보며 에반은 말없이 웃음. 걱정해 주어서, 내 옆에 있어 주어서 고맙다고, 소리 없는 감사를 말하며 에반은 미르를 마주 안은 채 잠을 청함. 인간과 드래곤, 전혀 다른 두 존재가 그렇게 하나로 이어져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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