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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소설

[스팍커크] 낙원(Paradise)

by RAYO. 2017. 4. 2.

커크의 정략결혼 소식에 로뮬란의 왕으로 각성한 스팍이 커크와 약탈혼하는 스팍커크. 나이트런 설정 기반.

로뮬란은 인간을 주축으로 한 행성 연합의 적대 세력 중 하나. 같은 벌칸으로부터 갈라져 이성과 논리를 통한 절제 대신 폭력과 야만, 원시적인 본능 그대로의 무절제를 택한 그들은 개체수는 적었으나 독특한 생태를 갖도록 진화했다.

로뮬란의 개체 하나하나가 '왕'이고, 배우자로 '여왕'을 가진다. 로뮬란 또한 벌칸과 마찬가지로 남녀 관계없이 다른 종족을 임신시킬 수 있으므로, 꼭 왕이 남성이고 여왕이 여성인 것은 아니다. 다른 종족의 개체를 납치해 강제로 여왕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다양한 유전 인자를 확보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여왕은 자손 개체들의 임신과 출산만을 담당한다.

이 자손 개체들은 왕만큼 지능이 발달하지 않은 대신 한번에 대량 임신, 출산이 가능하며 신체적으로 강인하고 왕과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왕의 의지로 통제되는 특성을 가진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손이 아닌, 증식과 그를 통한 다른 종족 및 행성 정복에 특화된 군대 조직으로서의 자손을 갖는 것이다.

왕과 여왕의 역량에 따라 지능이 발달한 상위 개체의 생산이 가능했는데, 상위 개체는 하위 개체에 대해 명령권을 가지며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또한 상위 개체일수록 왕의 통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된 자아를 지닌다. 왕이 죽으면 최상위 개체 중 하나가 왕으로 각성해 다른 개체들을 이끌어 나간다.

로뮬란은 행성 연합을 비롯한 타종족에 적대적이었고 파괴와 정복을 이어나갔는데, 특히 벌칸에게 증오심을 가져 벌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을 찾아내 공격하고는 했다. 스팍 또한 로뮬란의 공격으로 부모를 잃고 사렉과 아만다에게 거둬졌다.

그들은 스팍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들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고자 했다. 아만다가 인간이었기에 스팍은 혼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그가 속한 벌칸 사회로부터 소외당하며 자라 결국 벌칸 과학 아카데미 대신 스타플릿 아카데미를 선택하기에 이른다. 자신들의 선택 때문에 벌칸 사회에서 배척당한 스팍에게 사렉과 아만다 부부는 차마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전할 수 없었다.

아카데미를 거쳐 스타플릿에 들어간 스팍은 교관으로서 커크와 만나고, 이후 부함장-함장으로 같은 함선의 동료이자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스팍은 때때로 커크에 대해 도를 넘은 소유욕, 그리고 지배욕까지 느끼고는 했는데, 그것을 자신이 완전한 벌칸이 아니라 감정 조절이 서툴기 때문이라 여겨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그를 망가뜨려, 너에게서 도망갈 수 없도록, 네가 아니면 살 수 없도록 만들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속삭임을 애써 무시하며, 스팍은 연인인 커크를 상처입히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이성의 충고를 되새겼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두 사람에게 찾아들었다. 이종족과의 친선 외교를 주된 목표로 삼고 있는 스타플릿에서 새로 외교 관계를 수립한 종족과 화합을 과시하는 의미에서 스타플릿의 유명 인사인 제임스.T.커크 함장과의 혼담을 추진한 것이다. 당사자들의 의지는 사실상 무시된 정략결혼이었다. 새로운 종족과의 외교 관계가 스타플릿에 가져다 줄 이익이 컸기 때문이었다.

커크는 연인인 스팍의 존재를 근거로 들어 항의했으나, 돌아온 것은 함선 내 연애에 대한 질책과 엔터프라이즈 대원들을 들먹이는 은근한 협박뿐이었다. 스타플릿의 모든 규정, 그리고 우주법에 박식한 스팍이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상부의 권력에는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해도 결혼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애써 담담한 얼굴로 이별을 통보하는 커크 앞에서 스팍은 이성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억눌러 왔던 마음 속 깊은 속삭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그를 사로잡았다.

도망갈 수 없게 만들어, 그를 가져-

동시에 스팍은 로뮬란의 왕으로서 각성했다. 자신이 벌칸과 인간의 혼혈이 아니라 로뮬란의 후예임을, 그 중에서도 왕의 자질을 가진 최상위 개체임을 깨닫고 이전 왕들이 유전자에 새겨놓은 지식들을 흡수한 그는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스팍? 하고 부르는 커크를 너브 핀치로 기절시켰다.

커크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스팍은 말없이 커크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다정한 그 손길에 커크가 배시시 웃자 스팍의 표정도 온화한 빛을 띠었다. 스팍이랑 주구장창 섹스만 하는 꿈을 꾼 것 같아. 아니, 실제로 섹스하고 나서 잠든 건가? 몽롱한 머리로 생각하던 커크는 스팍? 내가 얼마나 잔 거야? 하고 묻다가 스팍이 벌칸의 복식으로 추정되는 차림인 것을 눈치챘다.

그 위화감에 의문을 품던 커크는 이내 자신이 스팍에 의해 기절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 흠칫하고 스팍에게서 떨어졌다.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스팍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커크의 팔을 잡아끌어 순식간에 자신의 품 안에 가두었다. 커크는 벗어나려고 버둥거려 보았지만 인간보다 세 배 강한 스팍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14시간 8분 13초동안 잠들어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서 떨어지려는 행동은 그만둬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격한 움직임도 삼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슨…!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여긴 대체 어디고?"

M급 행성 R-666입니다. 짐은 저의 반려, 하나뿐인 T'hy'la이시니 앞으로도 저는 짐과 함께할 것입니다.

"반려?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 말했잖아, 스팍. 나는 결혼할 거고 상대는 네가 아니…"

짐이야말로 그럴 수 없을 겁니다. 본드메이트로서, 저는 짐이 다른 누군가와 결혼하게 둘 수 없습니다.

커크의 말을 끊고, 스팍이 전에 없이 강압적인 태도로 통보했다. 커크는 아까부터 스팍이 소리내어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것이 아닌 강한 분노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착각이 아니었다. 스팍이 사용한 단어, 본드메이트가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크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본드메이트라고? 너랑, 내가?"

정확히 그렇습니다. 반복적인 성교는 본드의 형성에 실제로 유효한 방법이더군요.

"너… 너 사람이 자는 사이에 그 짓을 해?! 거기에 본드?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네 멋대로 내 일을 결정하는데? 이런 거 폭력이라고!"

스팍과의 길고 긴 섹스는 꿈이 아니었다. 엉덩이와 허리에 욱씬거리는 아픔이 몰려오자 얼굴이 시뻘개진 커크가 씩씩대며 따졌다. 말없이 허리를 쓸어오는 손길을 쳐내자 다시 눈썹을 들어올린 스팍이 커크의 머릿속으로 전한 것은 사과나 변명이 아니었다.

짐은, 본 적도 없는 여성과 강제로 결혼하는 건 괜찮고, 연인인 저와 본드를 맺는 건 싫은 겁니까?

"그건… 스팍, 네가 많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거라는 건 알아. 그렇지만 이런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돌아가서, 제가 아닌 다른 이와 결혼하실 겁니까?

"……"

짐이 돌아가고 싶어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결혼을 원하시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원해. 내가 원하는 거야. 그러니 돌아가게 해 줘. 본드에 대해서는 돌아가서 마저 이야기하자."

스팍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원하지도 않는 결혼을 원한다 말하는 커크는 본드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스팍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팍이 모른 척해주기를 바랐다.

스팍은 커크로부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해져 오는 감정들을 느꼈다. 그는 엔터프라이즈의 대원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함장인 자신의 탓으로 대원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만은 막고자 했다. 한편으로 그는 스팍을 사랑해 마지않았고, 대원들을 위해 연인을 밀어내야만 하는 것에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했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엔터프라이즈의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할 것이었다. 스팍을 포함해, 모두를 위한 선택을.

스팍은 말없이 커크의 뺨을 두 손으로 살며시 감싼 후,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도록 했다. 일렁이는 파란 눈동자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억누르는 빛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바로 스팍과 마주해 왔다. 그의 연인은 강한 사람이었다.

짐에게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다는 것은 압니다. 저를, 지켜주고 싶어하시는 것도 압니다. 그렇지만 저는 짐이 스스로를 희생해서 지켜주어야 할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저는 벌칸도, 인간도 아닌 로뮬란의 왕입니다. 이성도, 감정도 아닌 힘으로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힘으로 뭘 어떡할 생각인데? 스타플릿이랑 전쟁이라도 할 셈이야? 날 결혼시키려 했다는 이유 하나로?"

커크는 스팍이 로뮬란의 왕이라는 말에 놀라기는 했지만, 벌칸 혼혈이 로뮬란의 왕이 되었다고 해서 있던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스팍은 자신이 무엇이든 커크가 자신을 다르게 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필요하다면, 그리고 짐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로뮬란이 어떤 종족인지는 아시지요. 저의 힘이, 저의 반려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스팍이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으면 그곳은 둘만의 낙원이지만 로뮬란의 여왕, 행성 연합의 적을 자처하는 것이었다.

1. 손을 잡지 않는다 : 꿈 속의 낙원 엔딩

행성 연합의 평화 정신이 투철했던 커크는 스팍이 우주의 평화를 위협하는 로뮬란으로 살며 다른 모든 이들과 적대하기보다는 이제까지처럼 스타플릿에 속해 있기를 바랐기에 함께 돌아가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스팍은 커크가 스타플릿으로 돌아가 다른 이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커크를 돌려보내지 않은 채 로뮬란의 왕이 대개 그러하듯 강제로 여왕으로 삼는다.

본드를 통해 쏟아지는 스팍의 감정과 자신의 평화적인 이상에 반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진 커크는 깨어나지 않는 잠에 빠진다. 스타플릿에서 스팍과 연인으로 행복했던 때를 반복해서 꿈꾸며. 몸은 살아있지만 정신이 현실을 거부했고, 억지로 꿈을 깨운다면 그의 정신은 완전히 부서지고 말 것이었다. 스팍은 마인드멜드로 커크의 마음에 들어가 그의 꿈이 깨지 않도록 과거의 자신을 연기하며 어울려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2. 손을 잡는다

커크는 자신의 의지로 여왕이 되어 첫 아이를 낳는다. 처음 태어난 아이는 초록빛이었고 하위 개체이기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다.

2-1. 아이를 내던진다 : 실낙원(Paradise Lost) 엔딩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내던진 커크는 정신을 닫고 식음을 전폐한 채 틀어박혔다가 둘의 추적을 포기하지 않은 엔터프라이즈호에 의해 구조된다. 이후 커크는 자신의 손으로 스팍의 사건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함선을 이끌고 R-666 행성을 다시 찾는다.

새로운 여왕을 맞이하지 않아 호위에 사용할 개체도 많지 않았던 스팍은 순순히 커크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한 개체까지 스팍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앴다고 생각한 순간 커크는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스팍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이전 왕의 유산으로, 스팍의 왕가의 마지막 일원인 커크가 새로운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증거였다. 결국 커크는 진정한 마지막 개체인 자신을 죽임으로써 스팍으로부터 해방된다.

2-2. 아이를 소중하게 끌어안는다 : 복낙원(Paradise Regained) 엔딩

커크는 계속해서 스팍과 사랑을 나누고, 많은 아이들을 낳는다. 나중에 태어난 상위 개체 아이는 스팍의 검은 머리칼과 커크의 파란 눈을 가졌다. 그곳은 둘만의 낙원이었고 아이들은 낙원의 수호자였다. 설령 모든 우주가 적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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