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ar Wars

[아나루크] 삼종

by RAYO. 2018. 2. 10.
헤이든 필모를 아나루크로 보고 싶다! 하고 시작했으나 중간부터 변해 버린 무언가
영화 《버진 테리토리》 모티브. 수도원, 안대플. 약후방


눈 앞의 아이가 한 걸음 다가섰다. 후드를 눌러쓴 탓으로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앙다문 입술에, 가늘게 떨리는 어깨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나킨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이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언제고 후드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로 애타는 시선을 보내 오는 눈동자가 궁금해 후드를 젖히려는 아나킨을 아이가 제지했다. 헐렁한 로브 사이로 드러난 여린 손이 아나킨의 손을 감쌌다. 충분히 뿌리치고 억지로 밀어붙일 수도 있는 약한 힘이었으나 아나킨은 말없이 아이가 하는 양을 두고 보기로 했다. 살며시 그의 손을 놓은 아이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옅은 색 천이었다. 여인들이 두르는 스카프 같이. 조심스럽게, 아이가 아나킨의 눈을 가렸다. 가볍게 어깨를 미는 손짓에 따라 아나킨이 뒤돌자 이내 뒤통수에서 매듭을 묶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아이가 후드를 벗었다. 안대 너머로 어렴풋이 아이의 윤곽이 보였다. 천이 두껍지 않은 데다 빛이 드는 시각인 까닭이었다. 대담하게도 한낮이었다. 숨결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와서도 입술만 달싹이는 수줍은 아이를 아나킨이 끌어당겨 부드럽게 입맞췄다. 손가락 사이로 흐트러지는 머리칼은 아마도 햇살 같은 금발이었다.

아나킨 위에 올라탄 아이가 검은 로브를 걷어 올렸다. 안대를 찬 탓에 모처럼 드러난 속살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가느다란 허리를 더듬으며 아나킨은 아이의 살결이 곱다는 사실을 알았다. 살짝 건드린 것만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의 돌기는 선명한 붉은 빛임에 틀림없었다. 금욕의 장막 속에 감춰진 금단의 과실처럼. 수도자로 정결을 맹세했기에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열락이 아이의 몸에 꽃처럼 피어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몸을 섞으면서도 아이는 안대를 고집했고, 아나킨이 안대를 쓰지 않으면 후드를 벗지 않았다. 침묵은 수도자의 미덕이라 했던가, 아이가 자신에 대해 말하는 일도 없었다. 흐릿한 시야와 손의 감각만으로 아나킨은 아이를 알아갔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5피트 8인치쯤일까-, 팔다리는 늘씬하게 뻗었다. 엉덩이만 딱 좋을 정도로 살집이 붙어서 주무르면 구멍이 눅진하게 풀리곤 했다. 어디를 어떻게 찔러야 아이의 안이 자신을 꽉 조여 오는지, 그때 아이의 연한 허리가 어떤 모양으로 휘는지를 아나킨은 속속들이 꿰었으나 아이의 이름이며 나이, 수도원에 들어오기까지 사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수도원의 객식구인 제 시중을 드는 점이나 몸의 골격, 목소리로 보아 10대 후반 정도고, 입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추측만 할 따름이었다.

수도원에서 아나킨의 거처는 정원사의 오두막이었다.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였던 정원사가 죽어 나간 뒤 그의 자리를 아나킨이 차지하고 있었다. 본래 귀족이었으나 정쟁에 휘말려 변방의 수도원으로 몸을 피한 사정은 아나킨과 수도원장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정원사의 죽음이 수도원 바깥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대외적인 아나킨의 신분은 오래 전부터 그곳에서 일한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정원사였다. 그러나 수도원 안의 사람들에게 그는 보아서도, 들어서도, 그에 대해 말해서도 안 되는 유령 같은 존재로 통했다. 수도 서원을 하지 않은 이가 수도원에서 지낸다는 사실 자체가 위화감을 조성한 데다, 비밀이 새어나갈 경우 수도원 전체가 화를 입을 것을 우려한 원장이 엄명을 내린 까닭이었다. 시중을 드는 수사 아이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는지, 아이는 아나킨의 수발을 드는 내내 앞은 보이나 싶을 정도로 후드를 깊이 눌러쓴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아나킨이 아이만 했을 때 어땠는가를 생각하면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순종적이었으며 인내심이 강했다. 그러나 호기심을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했다. 아닌 척하지만 후드 너머로 쏟아지고 마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아나킨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유령의 정체에 관한 의구심이었고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으며, 한편으로 이곳에서 금지된 무언가를 향한 열망이었다. 추구하는 미덕만큼이나 수도자에게는 금지된 것도 많았다. 정결해야 하므로 성을 알아서는 안 되었고, 세속의 죽음을 뜻하는 검은 옷에 감싸여 몸을 함부로 드러내서도 안 되었다. 흰 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친 아나킨이 삐딱한 자세로 침대에 기대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 기척에 반듯하게 수건을 개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가 벌어진 앞섶에, 훤히 드러난 가슴팍에 당혹스런 시선을 떨구었다. 제 딴에 숨기려 애쓰지만 뻔히 보이는 아이의 반응을 즐기며 느긋하게 아나킨은 욕실로 향했다. 허둥대며 목욕용품 몇 가지와 수건을 집어 든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그를 따랐다.

소매를 걷어붙인 아이가 길어 온 물을 욕조에 부었다. 어린 수사의 팔은 가늘었지만 허드렛일에는 익숙한 모양새였다. 아나킨이 욕조에 자리를 잡자 얼마 지나지 않아 데운 수건이 그의 얼굴을 감쌌다. 온기가 가시지 않은 수건의 약간 촉촉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첫날 아나킨은 실수를 가장해 물동이를 엎었고,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물세례를 당한 아이는 송두리째 젖은 수도복을 말리느라 적잖이 곤욕을 치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후드를 미련하게도 눌러쓴 채 침묵을 지키던 아이가 취한 조치는 아나킨에게 뜻밖의 것이었다. 작은 수도자는 화내거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수도원장에게 달려가 담당을 바꿔 달라고 떼쓰는 대신 따뜻한 수건을 가져왔다. 까탈스러운 손님을 달래듯 수건을 덮어 주고는 아이가 옷을 벗었다. 그런 다음 욕실 한구석, 물이 튀지 않을 곳에 수도복을 놔 둔 뒤 손님에 대한 그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욕조 위는 습했다. 그 속에서 아나킨은 아이와 맨살을 맞대고 있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어린 수사는 손님의 몸을 씻어 냈다. 그러나 가끔 가다 아이의 숨은 거칠었다. 축축하고, 뜨거웠다. 오목하게 패인 골을, 혹은 볼록하게 솟은 둔덕을 의도하지 않은 양 아나킨이 건드릴 때 그랬다.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나킨은 수증기 탓을 해 두었다. 그의 손길이 다분히 노골적인 기색을 띨 때면 아이는 주춤하며 몸을 뒤로 뺐으나 달아나려 들지는 않았다. 당황, 불안, 수치심, 죄책감- 그 아래서 꿈틀대는 어떤 열망이 있었다. 머지않아 아이는 제 쪽에서 아나킨에게 다가가고 말 터였다. 아나킨은 그게 언제가 될지 궁금했다.

일곱째 되던 날 그 일이 이루어졌다. 아이가 한 걸음 다가섰다. 한낮의 수도원에서 그 일은 일어났다.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수도의 상황이 일변했고 아나킨은 왕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다음 날 일찍 이곳을 나설 것이었다. 시간은 저녁 여덟 시를 넘었다. 수도자들이 끝기도를 마쳤을 때였다. 본당의 불이 꺼지고 사방이 적막에 잠겨 있었다. 희미하게, 발소리가 났다. 이윽고 작은 빛이 문간에 비쳤다. 검은 옷을 입고 어둠에 묻힐 것처럼 아이는 그곳에 있었다. 밤에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발 또 한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흐릿한 불빛이 일렁였다. 아나킨 앞에 선 아이가 촛불을 높이 들었다. 어린 수사의 로브 아래에, 아나킨의 셔츠 위에 그림자가 졌다. 아이는 그에게 묻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다. 이제 떠나나요? 이곳에 다시 오지 않겠죠? 어쩌면 훨씬 전에 물어야 했을 수도 있다. 당신은 누구예요? 어디서 왔어요? 왜 이곳에 있나요? 그러나 작은 수도자는 입을 열지 않았고 침묵을 지켰다. 불현듯 어둠이 밀려들었다. 불씨를 꺼트린 것이 바람이었는지, 두 사람 중 누군가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이는 아나킨에게 안겼다. 안대를 쓰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여섯 시를 알리는 종이 쳤다. 어슴푸레한 새벽 무렵이었다.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나킨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등진 채 아이는 기도하고 있었다. 동그란 뒤통수는 예상했던 대로 산뜻한 금빛이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곱슬한 머리칼을 매만지자 잠시 멈칫하던 아이가 뒤를 돌았다. 옅은 하늘을 닮은 말간 눈동자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살며시 미소가 번졌다. 시원섭섭한 듯 아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인사를 건넸다. 루크 스카이워커. 그 자신의 이름이었다. 그로써 루크는 수도원의 손님과 인연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나킨에게 그것은 아이를 놓지 못할 이유가 되었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친아들이었으므로.


'Star Wa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나루크] 날개  (0) 2018.04.21
[아버님루크] 사이  (0) 2018.02.11
SW  (0) 2018.01.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