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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의 갓슈!!

[제온갓슈] 두 개의 작은 별

by RAYO. 2022. 10. 27.

Zwei kleine Sterne

*별을 보는 쌍둥이
*1부 완결 후 마계

같이 별을 보러 가세나.

복도 끝에서부터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려와 요란하게 방문을 열어젖힌 갓슈가 꺼낸 말이 너무나도 뜬금없는 것이었던 탓으로, 제온은 반응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세 요정이 지키는 강 아래 마법의 황금과도 같이 빛나는 눈을 하고서, 제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오는 동생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으나. 갓슈에게서 넘치는 생기는 대체로 이미 일어난 사고 내지는 곧 일어날 사고의 징후였으므로, 이름이 불린 뒤 이어지는 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제온은 신선한 방어를 잡기 위해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겠다는 갓슈의 선언이나 그와 비슷한 종류의 기행이라면 이골이 났고, 갓슈가 벌인 난장판을 수습하거나 갓슈가 엉뚱한 데로 튀어나가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일에서는 마계 제일이라 해도 좋을 솜씨를 발휘했다. 그런 제온이 생각하기에, 별을 바라보는 건 갓슈가 하고 싶어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쪽이 갓슈의 성미에 맞았고, 낭만을 이해하기에 갓슈는 어렸으며 갓슈의 관심은 손에 잡히지 않는 낭만보다는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맛있는 방어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제온 자신은 어떤가 하면, 책을 읽음으로써 낭만의 개념을 알기는 했어도 그런 건 사치라 여기며 단련에만 힘쓰는 나날을 보냈다. 인간계에 가기 전까지는.

제온?

어리둥절한 채 자신을 부르는 갓슈의 목소리에, 제온은 잠시 간의 상념에서 퍼뜩 깨어났다. 뭐가 됐든 말썽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면, 소중한 동생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테라스로 가자.

겨울 밤의 테라스는 쌀쌀했다. 왕이 감기에 걸려 콧물을 훌쩍이면 위엄이 땅에 떨어진다는 이유로, 갓슈는 두툼한 외투부터 목도리, 장갑, 부츠까지 빠짐없이 갖추고 나서야 제온의 손에서 풀려나 밖으로 향할 수 있었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살며시 내쉬자, 산봉우리에 얼어붙은 눈처럼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밤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을 정돈하며, 제온은 성 안 난롯가에서 데워 온 방석을 벤치에 놓고 갓슈를 불렀다. 마계는 수도라고 해도 인간의 도시처럼 화려한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지는 않았으므로, 왕성을 나가지 않아도 별을 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갓슈는 제온 옆에 꼭 붙어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온. 저기 보이는 게 은하수인가?
그래. 은하수를 보고 싶어서 나오자고 한 거야?
우누. 은하수에는 아주 크고 맛있는 우주 방어가 산다고 들었네! 지금 저리로 날아가면 그 방어를 잡을 수 있겠는가?
…갓슈. 그런 말은 누구한테 들었지?
키드한테 들었다네. 알쏭달쏭 박사가 해 준 이야기라니 틀림없을 것일세. 알쏭달쏭 박사는 키드의 파트너인데, 뭐든지 아는 신기한 박사라네!

제온은 한숨을 한 번 쉬었으나, 오직 갓슈가 상대일 때만 발휘되는 놀라운 인내심을 가지고 은하수를 하늘의 강이라고들 하지만 그곳에 방어는 살지 않으며, 방어는 강이 아니라 바다에 산다는 사실을 일러 주었다. 갓슈는 알쏭달쏭 박사가 방금 한 말은 허풍이었다고 밝혔을 때의 키드를 빼다박은 표정으로 누오오! 하고 외쳤다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우주 방어를 찾으며 조금 훌쩍였다가,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제온의 손길에 안정을 되찾았는지 다시 말을 꺼냈다.

킁. 은하수에는 별이 참 많구만.
눈으로 볼 수 있는 별만 해도 5,000개는 된다. 실제로는 4,000억 개쯤 있다고 하더구나.

4,000억이 얼마나 큰 수인지, 일, 십, 백, 천… 하며 손으로 꼽아 보던 갓슈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 갓슈의 산수 실력으로는 두 자릿수의 덧셈과 뺄셈이 한계였다.

누우. 그렇게 친구가 많다면, 별은 외롭지 않겠구만.

갓슈에게도 친구는 많았지만, 왕위에 오르면서 친구들과 이전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게 된 탓인지, 혹은 왕을 정하는 싸움에 참가하기 전 외톨이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 것인지 갓슈는 조금 쓸쓸한 듯한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이 가슴을 아프게 해서, 제온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마음을 굳히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힘있게 갓슈의 손을 잡았다. 갓슈가 외롭지 않도록, 아프지 않도록 제 손으로 지킬 것이었다. 갓슈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제온은 맹세를 했다. 제 쪽을 돌아본 갓슈와 눈을 맞춘 채, 얼마간 말이 없던 제온은 다른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별은 아주 멀리 있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마물이나 인간의 손이 도저히 닿지 않을 정도로. 별들끼리도 마찬가지야. 별과 별 사이는 네가 번개만큼 빠르게, 수명이 다할 때까지 달려도 미치지 못할 만큼 멀지.

풀이 죽은 갓슈의 손에 전해지는 온기와 닮은, 나지막한 제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인간은 하늘의 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었다.
별자리?
그래. 이를테면 저쪽에 나란히 붙은 별 셋은 오리온의 허리띠지. 오리온은 바다를 다스리는 신의 아들이자, 솜씨 좋은 사냥꾼이었는데…

제온의 설명은 때때로 매끄럽지 못했고, 갓슈는 제온이 사용하는 단어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제온은 별에 얽힌 이야기를 쉽게 풀어 갓슈에게 전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고, 갓슈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쳐 가며 제온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뛰어난 사냥꾼 오리온과, 그의 사냥개 두 마리.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 큰개자리의 시리우스,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 형제의 대화가 도란도란 울리는 밤을, 겨울 하늘의 대삼각형이 고요하게 비추었다.

제온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일 년에 한 번 칠석에만 만날 수 있는 견우와 직녀에 대해 언급했을 때, 갓슈는 인간계에서 키요마로의 모친 하나가 칠석날 만들어 주었던 소면과 조릿대 잎으로 싼 떡을 떠올렸다. 착한 왕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적어 대나무에 매달았던 색종이도. 마물과 인간은 견우와 직녀보다 더 서글픈 인연인지도 몰랐다. 마계와 인간계에서 같은 밤하늘을 볼 수 있지만, 마계에서 인간계로 건너갈 수 있는 건 천 년에 한 번, 왕을 정하는 싸움을 치를 때뿐이었다. 또 마물은 싸움을 위해 인간계로 향했다가 책이 불타면 다시 마계로 돌아왔지만, 인간은 마계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마물과 인간은 파트너가 되어 함께 싸우며 유대를 쌓지만, 싸움이 끝나면 은하수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아득한 이별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들을 성장시킨 마음의 힘, 그리고 함께 지낸 추억만이 형태 없는 오작교로 두 세계에 남았다.

그 마음을 잊지 마.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거야! 그 앞에 놓여있는 ‘착한 왕’을 목표로…

갓슈는 착한 왕이 되겠다는 자신을 위해 그야말로 목숨까지 내놓았던 파트너 키요마로의 모습을 되새기다가, 문득 뇌리를 스친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제온은 어떻게 그렇게 별에 대해 잘 아는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 겐가.
마계의 천문학은 인간계만큼 발달하지 못했다. 별을 분류하는 기준이나, 관련된 전설도 인간계와는 다르지. 네게 해 준 이야기는 모두 인간계에서‥ 듀포를 통해 알게 된 거야.

파트너 듀포의 이름을 꺼내면서, 제온은 약간 망설였다. 설탕을 빚어 만든 조각처럼, 달콤하면서 귀한 기억의 귀퉁이를 조심스레 내보이는 기분이었다. 실상 듀포와 설탕의 공통점은 하얗다는 것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듀포는 섬세함과는 거리가 있는, 무심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제온이 듀포를 통해 별에 관한 지식을 얻은 건 사실이었지만, 듀포는 제온이 갓슈에게 해 준 것처럼 친절한 가르침을 베풀지는 않았다. 종종 제온이 지붕 위에서 밤하늘을 보는 것을 알고는, 장을 보러 갔을 때 식재료와 함께 어린이용 과학책 몇 권을 사 와서는 테이블에 덩그러니 올려 두었을 뿐이었다. 제온이 인간계의 말은 알아듣지만 글자는 읽지 못해 책의 그림만 노려보고 있자, 이번에는 텔레비전 옆에 교육용 비디오테이프 몇 개가 놓였다. 비디오를 보던 제온이 간혹 듀포에게 질문을 던지면, 듀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머리가 나쁘다며 제온의 속을 긁어놓는 한편, 완벽하지만 듣는 이를 배려하는 성의는 거의 담기지 않은 답을 주고는 했다. 살가운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어도, 돌이켜보면 듀포와의 생활에는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었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처럼. 어둠 속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지만 따스한 빛과 같은 것이.

갓슈는 늦은 밤놀이에 어울려줄 만한 이가 같은 왕궁에 사는 제온뿐이라 제온에게 별을 보러 가자고 한 거였지만, 결과적으로 별에 대해 잘 알고 갓슈에 한해 가이드까지 제공하는 제온은 동행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밀려드는 졸음에 겨워 갓슈는 제온의 어깨에 기댔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머리로 제온이 풀어낸 많은 양의 정보를 담으려 애쓴 데다, 잠자리에 들 시간을 넘긴 까닭이었다. 여느 때라면 제온은 찬바람에 혹여 갓슈의 몸이 상할까, 갓슈를 안아들고 성 안으로 돌아가 조심히 침대에 누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제온은 어깨를 통해 전해지는 갓슈의 체온과, 저를 향해 실린 무게에서 더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고요한 밤의 품에 안겨, 별빛이 그려낸 평화를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축복하듯 머리 위로 내리는 별빛과 포근한 애정에 감싸여, 자장가를 부르듯 제온은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보이는 별들은 쌍둥이자리다. 쌍둥이자리 전설의 주인공은 카스토르와 폴룩스라는 쌍둥이 형제란다. 둘은 신들의 왕, 가장 강력한 번개를 지닌 제우스의 아들이었지. 형제는 용맹한 영웅으로 나란히 이름을 떨쳤지만, 불사를 가진 건 동생뿐이었다. 알파별 카스토르보다 베타별 폴룩스가 더 밝게 빛나는 것처럼 말이야. 동생 폴룩스는 형 카스토르가 죽자, 슬픔에 잠겨 따라 죽으려고 했다는구나. 허나 폴룩스는 불사의 몸이었기 때문에 죽지 못했고, 아버지 제우스를 찾아가 죽음을 간청했다. 그 우애에 감동한 제우스는 형제를 하늘의 별로 만들어 주었고,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쌍둥이자리가 되었단다.

인간은 별에서 영원을 본다고들 한다. 연인들은 별에 대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지. 허나 하늘의 별도 모습과 위치가 변하고, 언젠가는 수명을 다한단다. 그럼에도, 천 년이 지나 지금 땅 위에 선 이들이 모두 스러지며 산이 닳고 바다가 말라 없어진다 해도, 너의 머리 위에서 별들은 빛날 것이다. 인간보다 마물이, 마물보다 마계의 왕이, 마계의 왕보다 별이 긴 수명을 가진 까닭이지. 우리를 가엾게 여겨 하늘의 별로 만들어 줄 신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를 이루는 물질은 모두 별과 함께 태어난 것이니, 우리는 죽어서 다시 별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갓슈. 나는 너와 영원을 걸을 수는 없다. 영원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천 년이라는 시간조차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지. 허나 한 별의 잔해가 또 다른 별이 되고, 생명체를 이루었듯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형태를 바꾸어 가며 탄생과 죽음을 반복한단다. 바꿔 말하면, 한 번 존재했던 것은 모습이 변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남는 거야. 키요마로의 마음의 힘이, 키요마로와 네가 쌓았던 유대가 왕이 된 너의 모습으로 남았듯이 말이다. 네게로 향하는 나의 말이, 손길이, 천 년 후 너의 안 그 어딘가에서 너를 삼키려 드는 어둠을 밝혀 주기를. 넘치는 이 사랑이, 땅의 가장 높은 곳에 홀로 설 너를 휩싸고 돌기를.

축복과 애정을 실어, 제온은 갓슈에게 마주 기댔다. 포개진 두 체온이 서로에게 번져 갔다. 두 개의 작은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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