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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의 갓슈!!

[제온갓슈] 틈

by RAYO. 2022. 10. 7.

*어리광 부리는 갓슈와, 그를 받아주는 제온.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사춘기 형제.


마물의 감도 갈고 닦는 거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제온?

극비를 나타내는 붉은 도장이 눈에 띄는 서류 뭉치를 빠르게 넘기던 제온이 툭 던진 말에, 갓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네가 다른 마물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게 된 건, 인간계에서 클리어와 결착을 짓기 전쯤부터니까 말이다.
우누, 그 말대로일세. 그 전에는 다른 마물을 눈 앞에 두고도 마물인 줄 몰랐다네. 그런 점에서 제온은, 인간계에 오자마자 숲에서 나를 찾아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내 경우는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았으니까. …그때 숲에서의 일은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누. 확실히 그때 제온은 무서웠고, 기억을 빼앗겨서 고생도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상냥한 형님이 아닌가. 미안할 것 없다네.

제 말에 신경이 쏠린 듯, 서류를 뒤적이던 제온의 손이 잠시 멈춘 틈을 타 갓슈는 제온을 껴안고 그 품으로 파고들었다. 제온은 평소 갓슈가 들러붙으려 하면 왕으로서 체통을 지키라며,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먹여 제지하고는 했다. 그러나 둘만 있을 때, 제온의 주의가 오롯이 갓슈에게 집중되며 작은 틈이 생겨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 찰나를 파고들어 어리광을 부리면, 제온은 작게 한숨을 쉬면서도 갓슈를 내치지 않고, 마주 안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묵묵히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이었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제온이 제게 틈을 허락하고 마는 것은 그가 형이고 제가 동생이기에, 우리가 형제이기 때문일까. 갓슈는 생각했다. 칸쵸메와 티오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제온이 무섭지만 동생인 갓슈에게만은 무르다고들 했다. 한 단어로 요약해서 ‘브라콤’이라고도 했다. 성 밖에 살던 어린 시절, 공원에서 놀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형제를 보며 갓슈는 형이라는 존재를 선망했다. 우연히 유노의 말을 엿듣고 제게도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머릿속으로 형과의 만남을 수없이 그려보았다. 뜻하지 않았던 오해, 그리고 인간계의 존망을 건 싸움을 넘어 마침내 저와 함께 살게 된 형 제온은 그 강함으로 때로는 앞에서 저를 이끌고, 때로는 뒤에서 저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돼 주었다.

제온은 강하고, 또 상냥했다. (칸쵸메나 티오 등이 이 말을 들었다면, 갓슈 한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고 지적했을 것이다.) 섬광을 닮은 보랏빛 눈동자가 저를 향할 때, 그곳에 깃든 다정을 갓슈는 느낄 수 있었다. 품을 파고들 때면 마주 안아주는 팔에 안심이 되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은 따뜻했다. 형의 존재가, 형제라는 관계가 어린 시절 설레며 그렸던 것 이상으로 가슴 속을 온기로 가득 채우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갓슈. 행복에 잠겨,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위화감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고개를 들었을 때.

아. 숨결이, 닿았다. 입술이 겹칠 듯한 거리에서, 갓슈는 제온의 눈을 마주보았다. 불꽃이 이는 보랏빛 안광. 넓은 방에서 혼자 자는 게 적응이 안 된다며, 제가 떼를 썼을 때 잠자리를 지켜주던 등불- 그런 은은한 다정이 아니었다. 손을 대면 델 것처럼, 아니, 그대로 발끝까지 삼켜질 것처럼 무시무시한 업화가 넘실거렸다. 제온이 갓슈에게 입맞춘 적이 없지는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좋은 꿈을 꾸라며 이마에 입맞춰 주기도 했고, 갓슈가 왕으로서의 책무 때문에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는 외로움을 토로하면 뺨에 입맞추는 것으로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러니 제온의 입술이 제 입술에 닿았다 해도 갓슈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온의 눈에 비치는 감정은, 입술과 입술의 거리는. 제온이 제게 틈을 허락하는 건, 우리가 형제이기 때문에. 형인 제온이 동생인 제게 상냥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턱도 없는 착각이었다. 이번에 허를 찔린 것은, 갓슈 쪽이었다.

위기감이라는 걸 좀 가져.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봐.

제온이 몸을 물리고, 갓슈의 뺨에 가볍게 닿았던 손도 떨어져 나갔다. 목 안쪽에서 올라온 홧홧한 열이 얼굴로 퍼져 가는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제온. 익숙한 이름이, 제게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이 낯설었다. 어린 시절부터 갓슈의 마음을 채워 온 꿈 하나. 정다운 형제라는 이름의 꿈을, 균열이 잠식해 나갔다.

마음과 마음 사이의 균열이 메꿔지는 것은, 두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은, 금지된 열기에 몸도 마음도 맡겼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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